이민하 <7인분의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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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이민하 <7인분의 식사>

by 브린니 2020. 6. 28.

7인분의 식사

 

 

두 사람은 악수하고 두 사람은 얘기하고 두 사람은 웃고

한 사람은 빈 의자 옆에 앉아 창밖을 본다

 

악수는 셋이서 못 하나?

일곱이서 손을 잡으면 그건 체조가 되나?

 

밖에는 흰 눈이 목련꽃처럼 떨어지는데

 

일곱 사람이 모이면 1인분의 밥공기처럼

일곱 개의 우정이 분배될까

번갈아 짝을 맞추면 스물한 개의 우정이 발명될까

서넛씩 대여섯씩 뭉치면 동심원처럼 늘어나는

기하급수의 우정을 위해

 

종소리가 울려 퍼지듯

주방에는 낡은 냄비 낯선 냄비 동시에 끓고

일곱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면

세 쌍의 대화와 한 명의 독백이 발생할까

한 쌍의 대화가 탱크처럼 독백 위를 지나가고

세 쌍의 대화가 함께 폭발하면 거대하게 부푸는 핵구름 아래서

 

내통하는 입과 귀가 몰래 낳는 기형의 비밀들

목을 비틀면 벌컥,

거품부터 입에 무는 맥주잔을 쨍그랑 부딪치며

귀를 틀어막을 수 없어서 소시지로 꾸역꾸역

입을 틀어막는 사람들

 

합창은 혼자서 못 하나?

일곱이서 입을 맞추면 그건 침묵이 되나?

 

밖에는 흰 눈이 까마귀처럼 떨어지는데

 

일곱 사람이 게임을 한다

두 개의 테이블을 국경선처럼 붙이고

법칙과 벌칙 사이에

모여 앉으면 나사처럼 끼워지는

홀수의 감정

컨베이어벨트처럼 게임은 돌아가고

술래가 된 사람이 007가방을 집어 들고 차례로 일어선다

 

첫 번째 술래가 검은 복면을 쓰고 자리를 뜬다

스무 살의 술래가 후닥닥 인사도 없이 따라가고

서른 살의 술래가 추적추적 그 뒤를 밟고

 

핏물 자욱한 화염 속으로 종적을 감추는 사람들

그다음이 누구든 상관없다는 듯이

 

밖에는 흰 눈이 토마토처럼 떨어지는데

 

수류탄처럼 심장을 말아 쥐고서

빈 의자 위에 앉아 있는

나는 여덟 번째 사람, 혹은

아직 오지 않은 첫 번째 사람

                                                    ―이민하

 

 

【산책】

몇 명의 친구들이 모이면 섞이지 못하는 한두 명씩은 꼭 있다.

혼자 떨어져 먹고, 혼자 떨어져 창밖을 보거나, 요즘은 혼자 휴대전화에 목을 빼고 있다.

스스로 소외되는 특이한 인간.

 

꼴지가 되기 십상인 사람.

뭘 해도 조금 늦거나 괜히 먼저 설레발을 치는.

눈치가 없거나 혼자서만 눈치 보는 애.

어디서나 그런 사람 하나쯤은 꼭 있다.

 

쉽지 않다. 그런 사람이 되거나 그런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

그런 사람이 되면 인생이 피곤하고 힘들다.

그런 사람을 옆에 두면 같이 인생이 피곤하고 귀찮다.

아무튼 번거롭고, 신경 쓰이고,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나 그 사람도 나의 친구이거나 이웃이거나 직장 동료이거나 거래처 사람이거나 동호회 사람이다.

어쩌면 내가 그런 사람일 수도 있다.

 

친구가 없는 사람 혹은 친구는 많은 그 친구들과 속깊이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친구 무리에 끼여 있지만 섞이지는 않는 사람.

있지만 없는 사람. 투명인간.

 

숫자를 세면 있지만 그 사람을 찾는 사람은 없기에 없어 보이는 사람.

없어도 그만인 사람.

일곱이 앉아 있는데도 여덟 번째 사람, 혹은 아직 오지 않는 첫 번째 사람.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어디에나 꼭 하나씩 있는 사람, 그러나 존재감이 전혀 없는 사람.

투명인간이라고 놀릴 수는 있지만 우리와 함께 늘 있는 사람.

내가 아니면 너인 사람.

수많은 ‘너’ 가운데 한 사람.

 

그 사람과 산책을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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