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본느프와 <참다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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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이브 본느프와 <참다운 이름>

by 브린니 2020. 6. 28.

참다운 이름

 

 

나는 이름 붙일 것이다, 그대가 있었던 그 성城을 사막이라고

그 목소리를 밤이라고, 그대의 얼굴을 부재不在라고,

그리고 그대가 불모의 땅에 쓰러지게 될 때

나는 이름 붙일 것이다, 그대를 데려간 번갯불을 허무라고

 

죽음은 그대가 사랑했던 나라. 그러나 나는 간다,

영원히 그대의 어두운 길을 통해서.

나는 부순다, 그대의 욕망, 그대의 형태, 그대의 기억을

나는 연민의 정을 품지 않는 그대의 적敵.

 

나는 그대를 싸움이라고 이름 붙일 것이다,

나는 그대에 대해서 싸움의 자유를 가질 것이다,

또한 나는 가질 것이다, 내 손에 그대의 어두운 꿰뚫어진 얼굴을,

내 마음 속에 천둥치는 비바람 훤히 비치는 그런 나라를.

 

                                          ―이브 본느프와(프랑스, 1923-2016)

 

【산책】

내 마음대로 누군가의 이름을 바꿔 불러 본 적이 있는가.

 

페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에서는 주인공이 책상을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여러 가지 사물들의 이름을 다 바꿔 버린다. 나중에는 자기만의 언어로 스스로 소통하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름이란 사람들 사이의 약속이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뱃속에 있을 때 부르는 이름(태명胎名) 어릴 때 부르는 이름(아명兒名), 부모님이나 집안 어른이 짓는 이름(자字) 친구들이 부르는 이름(호號), 자신에게 붙인 이름(호號) 등 이름을 여러 개 갖고 살았다. 문인이나 예술가 등에게는 아호雅號도 있었다.

 

 

이렇게 인정받은 이름 외에 누군가를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

사물에게 다른 이름을 붙인다는 것.

그래서 언어의 질서를 망가뜨린다는 것.

 

실제로 그런 일은 역사상 단 한 번 있었다.

구약성서의 *바벨탑 사건.

신이 인간들의 언어를 혼잡스럽게 한 것이다.

 

이브 본느프와의 시 <참다운 이름>은 그대와 관련된 사물이나 사건을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어쩌면 그대라는 존재 자체가 연인인지, 나라(조국)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사람인지 아닌지도.

 

나는 그대의 참다운 이름을, 그대와 관련한 여러 가지의 참다운 이름을 찾는다. 이 세상의 언어들이 참, 진실을 다 밝히지 못한다는 생각에서일지도 모른다.

오염된 언어들 속에서 참 언어를 찾고자 하는 시인의 열망일 수도 있다.

 

원래 있던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부름으로써 기존의 의미체계를 흔들고, 질서를 무너뜨리고 나서 시인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이 아마도 참다운 이름이 아닐까.

 

파괴를 통해서, 싸움을 통해서 얻게 되는 참 혹은 진실.

시란 아마도 이런 식의 은유를 통해 참(眞) 혹은 미美와 선善 등을 얻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세기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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