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수학자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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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김소연 <수학자의 아침>

by 브린니 2020. 6. 29.

수학자의 아침

 

 

나 잠깐만 죽을게

삼각형처럼

 

정지한 사물들의 고요한 그림자를 둘러본다

새장이 뱅글뱅글 움직이기 시작한다

 

안겨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안겨 있는 사람을 더 꼭 끌어안으며 생각한다

 

이것은 기억을 상상하는 일이다

눈알에 기어들어 온 개미를 보는 일이다

살결이 되어버린 겨울이라든가, 남쪽 바다의 남십자성이라든가

 

나 잠깐만 죽을게

단정한 선분처럼

 

수학자는 눈을 감는다

 

보이지 않는 사람의 숨을 세기로 한다

들이쉬고 내쉬는 간격의 이항대립 구조를 세기로

한다

 

숨소리가 고동 소리가 맥박 소리가

수학자의 귓전에 함부로 들락거린다

비천한 육체에 깃든 비천한 기쁨에 대해 생각한다

 

눈물 따위와 한숨 따위를 오래 잊고 살았습니다

잘 살고 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요

 

잠깐만 죽을게,

어디서도 목격한 적 없는 온전한 원주율을 생각하며

 

사람의 숨결이

수학자의 속눈썹에 닿는다

언젠가 반드시 곡선으로 휘어질 직선의 길이를 상상한다

 

                                                                        ―김소연

 

 

【산책】

가장 안정적인 도형이 삼각형이라고 한다.

중심이 완전히 잡히고 흔들리지 않는 도형.

그런데 인간관계에서도 그런가.

 

삼각관계처럼 위태롭고 위험하고 가슴 아픈 것이 없다.

삼각관계처럼 인간을 고통스럽게 물고 늘어지는 것도 없다.

누군가는 사랑에는 어떤 장애물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질투가 사랑을 더 불러일으킨다고도 말한다.

 

그런데 어디 그런가.

삼각관계에 있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죽을 맛이다. 지옥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잠깐 죽어 있는 것과 같은 게 아닐까.

 

혹, 수학자는 죽을 때 삼각형처럼 안정되고, 동요가 없는 세계를 꿈꾸는지도 모르지만.

 

삼각형은 꼭지점이 보이지만

둘 뿐인 관계에서는 “안겨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안겨 있는 사람을 더 꼭 끌어안으며 생각한다”처럼 다른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더 꽉 끌어안고 놓지 않는다.

떨어지면 마치 죽을 것처럼.

 

삼각형이나 선분과 같은 몸으로 죽는다는 것 혹은 그런 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비천한 육체에 깃든 비천한 기쁨에 대해 생각한다 눈물 따위와 한숨 따위를 오래 잊고 살았습니다 잘 살고 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요”

 

잘 살든 못 살든 사는 게 기쁜 것일까.

그렇다. 사는 것보다 더 기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수학자의 삶이 모두 다 곧은 직선의 삶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가 수학자가 아니더라도 완벽하게 둥근 것에 대한 갈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시작도 끝도 없이 둥근,

앞으로든 뒤로든 막힘이 없는 둥근,

그 속에 있으면 평화로운 둥근,

깨어지지 않는 반지의 약속 같은 둥근,

옳다고 인정하는 둥근,

지구, 세상, 별, 모두 둥근.

둥근 사람의 마음.

 

“사람의 숨결이 수학자의 속눈썹에 닿는다 언젠가 반드시 곡선으로 휘어질 직선의 길이를 상상한다”

 

크고 완벽한 동그라미를 위해 우리의 생은 직선으로 길게 늘여야 한다.

오래 건강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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