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빠스제르나끄 <유명해진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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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보리스 빠스제르나끄 <유명해진다는 것은>

by 브린니 2020. 6. 29.

유명해진다는 것은

 

 

유명해진다는 것은 아름답지 못하다.

그것이 사람을 높이 치켜올려 주는 것이 아니다.

고문서를 만들지 말고

원고를 아낄지어다.

 

창작의 목적은 자기를 바치는 것이지,

센세이션이나 성공이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세상 사람들의 입술에 오르는 것은 창피한 노릇이다.

 

하지만 자신을 거짓되게 일컫지 말지며,

마침내는 우주의 사랑을

자기에게 끌어오며,

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듣도록 살지어다.

 

여백일랑 운명 속에 남길 것이며

종이 위해 남길 것이 아니니라.

온 인생의 한 장 한 절은

난 외의 여백에 적을지니라.

 

무명無名 속에 잠겨

그 속에서 자기의 발걸음을 숨길지니라

안개 속에 한 고을이 숨어,

지척을 분간할 수 없듯이.

 

다른 사람들이 생생한 발자취를 따라

한 뼘 한 뼘 너의 길을 가리라.

그러나 패배인지 승리인지를

너 자신은 분별하지 말지니라.

 

그리고 한 치도 자기의 개성으로부터

물러서지는 말지니라,

그러나 팔팔하게 살아 있을지어다,

오직 팔팔하게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아 있을지어다.

 

                           ―보리스 빠스제르나끄(러시아, 1890-1960) *1958년 <의사 지바고> 노벨문학상 결정

 

 

【산책】

노벨문학상이 결정되었으나 거부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상황에 놓인 빠스제르나끄가 노벨상 사건 이전에 쓴 시이다. 아마도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쓴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소비에트작가연맹에서도 제명당할 정도로 정치적 핍박을 받았던 빠스제르나끄는 유명세를 떨친다는 것이 오히려 목숨의 위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시와 소설이 그냥 그대로 하나의 예술로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을 만족해 했을 뿐 그것으로 인해 유명세를 타는 것을 거부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빠스제르나끄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세상 사람들의 입술에 오르는 것은 창피한 노릇이다.” 이라고 말한다.

 

작가적 허명이란 어느 곳에나 있다.

그 작가의 실제 작품의 질과 깊이와는 무관하게 이름을 떨치는 작가들은 어디에나 있다.

 

“센세이션이나 성공은 창작의 목적이 아니다.”

그러나 작품이 뛰어나다면 작가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유명세가 난 뒤의 작가의 태도가 이름 뒤에 숨게 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작품 뒤에 작가의 이름이 숨어야 한다.

 

이름이 앞서는 순간 그 작가의 작품이 생명력을 잃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빠스제르나끄 역시 이를 경계한 것이리라.

 

“안개 속에 한 고을이 숨어, 지척을 분간할 수 없듯이. 다른 사람들이 생생한 발자취를 따라 한 뼘 한 뼘 너의 길을 가리라. 그러나 패배인지 승리인지를 너 자신은 분별하지 말지니라.”

 

안개가 한 고을을 숨기고 있듯이, 선배 작가들의 발걸음을 좇아 한 뼘 한 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 결과가 패배인지 승리인지 분별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의 개성으로부터 한 치도 물러서지는 말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아 있어야 한다.”

 

시는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다.

시를 죽이는 것들(유명세와 같은)과 싸우면서 끝까지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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