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하 <지하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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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이민하 <지하 이웃>

by 브린니 2020. 6. 30.

지하 이웃

 

 

천장엔 불빛이 눌어붙었고

바닥엔 발이 닿지 않았고

밖에는 비가 오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옆집 부부의 심야 격투도 없고

세상모르고 코를 고는 세탁기 소리도 없고

골목에는 개가 짖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혀가 찐득하게 아팠고

머리칼이 전깃줄처럼 늘어져 있었고

두 분은 뜨고 있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나는 산책을 나갔고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고

누군가 나를 안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소리가 나지 않는 대화를 했고

어떤 사람들은 곁눈으로 흘깃,

나의 영정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발을 두고 나온 사람들이 날아서 집으로 갔다.

안아줄 사람이 오기 전에 날개를 버렸다.

 

                                                     ―이민하

 

 

【산책】

영화 ‘기생충’의 지하방에는 고유의 냄새가 있다.

그 냄새는 지하방 밖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다른 집에까지 따라 가서 그 집 안에서도 냄새를 풍긴다.

사람의 몸에 달라붙고, 옷에도 눌어붙는다. 그래서 그 지하방의 냄새는 그 사람의 냄새가 된다.

 

한 사람을 기억할 때 냄새로 기억될 때가 있다.

그 사람의 고유한 향기.

그 사람의 향수, 그 사람의 샤워크림, 샴푸, 그 사람의 화장품 등등.

 

지하에서 산다는 것은 첫 번째로 쾌쾌한 냄새와 함께 산다는 것을 뜻한다.

공기가 잘 순환되지 않아서 습기와 곰팡이 때문에 생기는 냄새이다.

공기가 순환되지 않는다는 것은 폐가 신선한 공기를 마시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이 단지 지하에 산다는 이유로 신선한 공기를 마시지 못한다는 것이 어처구니없다.

날마다 산책을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 한다.

 

이민하의 <지하 이웃>은 단순히 지하방에 사는 이웃을 말하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

땅 밑 즉 죽은 사람들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혹은 지하방에 사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처럼 여기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잘 살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밖에는 비가 오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골목에는 개가 짖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두 분은 뜨고 있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누군가 나를 안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나의 영정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사람들의 상황이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다?

 

내가 사는 모습이 꼭 그런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살아 있으되 사실은 죽은 것 같은 느낌일 때가 있다.

 

“발을 두고 나온 사람들이 날아서 집으로 갔다.”

 

지하에 있으면 땅을 밟을 발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땅 밑이니까.

 

그래서 날 수 있다면 행복할까?

A를 할 수 없어서 A보다 나은 것을 할 수 있다면 좋을까?

 

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냄새로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면 말없이 대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동족들끼리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지상의 날씨가 맑은지 흐린지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지 아무런 상관없이, 아니 지상보다 더 민감하게 지하의 삶은 냄새를 풍긴다.

지상이 맑든 흐리든 비오고 바람 불어도 산책을 나서야 한다.

 

발이 없어도 날아서라도

신선한 공기를 찾아.

생명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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