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혼인금지법 3 : 상속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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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짧은 소설] 혼인금지법 3 : 상속금지법

by 브린니 2020. 6. 29.

혼인금지법 3

 

 

 

그래서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모든 재산이 국가에 귀속된다고?

바에 앉은 손님이 소리를 높였다.

이 사람,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나.

카페 주인이 달래며 말했다.

 

그게 말이야. 사람이 자기 재산을 소유하는 데도 기한이 있다는 거지. 자신이 살아 있을 동안만 자신이 자기 소유를 점유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거지. 어차피 죽으면 자신이 소유할 수 없으니까.

그건 그렇지. 하지만 내 소유가 없어진다는 게 말이나 되나. 내 자손이라도 물려받아야지.

글쎄. 과연 그럴까. 왜 자네 소유가 자네 자식에게 상속되어야 하나. 그건 무슨 근거지?

 

법에 그렇게 되어 있잖나.

그러니까 법을 바꾸는 거지. 이젠 상속을 못한다, 하고 말일세.

그게 말이 돼?

왜 말이 안 되지?

법에 상속하기로 되어 있는데 그걸 못하게 하다니.

그러니까 말일세. 그래서 법을 바꾼다잖나. 상속하지 못하도록.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내 재산을 자식에게 상속하는 게 맞지 않나.

그게 왜 맞는가.

법이 그러니까.

 

그러니까 법을 고친다니까.

뭐?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고.

말 그대로야. 법을 고쳐서 더 이상 개인의 재산이 자손에게 대물림될 수 없게 한다니까.

아니, 법을 바꾸다니. 누구 맘대로?

법을 못 바꾸다니, 누구 맘대로 못 바꾸나.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이보게, 어차피 법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걸세. 그러니까 바꿀 수도 있는 거야.

언제부터 법을 사람이 만들고 없애고 마음대로 한단 말인가. 법은 예부터 있어 왔고, 우리가 지키고 있는 건데.

우리나라 법은 대한민국이 세워지고 국회가 만든 거니까 백년도 안 된 것일세. 그 사이에도 수없이 바뀌었고, 이제 못 바꿀 이유라도 있나.

법이란 게 원래……사람이 사는 데 꼭 필요하고, 지켜야 되는 것이잖아. 그래서 만든 것이고. 그러니까 잘 보존하고 지켜야지.

이보게. 얼마나 많은 법이 수없이 바뀌었는지 아나? 그러니까 상속법도 바뀌는 거야. 상속 못하도록.

상속법인데 왜 상속을 못해?

그러니까 법 이름도 바뀌지, 상속금지법으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혼인도 못하게 금지하더니 상속도 금지하는 거야?

 

혼인이 법적 효력이 없으니까 혼인으로 인해 태어난 자식도 혼인으로 인해서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그러니까 상속을 받을 권리도 없어. 그런데 그것을 더 강화하기 위해 아예 상속금지법을 제정하는 거지.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느냔 말이야. 잘 있는 법을 왜 뜯어고쳐?

간단하지, 새로운 법이 생겨서 더 많은 사람이 이 법의 혜택을 받아 더 잘살기 위해서지.

 

상속을 금지하면 더 잘살게 돼?

당연하지.

무슨 개소리야. 내가 그냥 공으로 죽으면 내 자식들은 어떻게 살라고.

자네가 유산 한 푼 없이 죽는다고 자네 자식들이 왜 못 사나. 지금도 잘 살고 있잖아.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직장 생활하면서.

아니, 그게 어째서 상속과 같아?

다를 게 뭔가. 지금도 자네 자식들은 다 자기 앞가림을 하고 있어. 그러니까 자네 재산을 상속 받지 않아도 잘살 거야. 그러니 염려할 필요 없어.

상속을 받으면 더 잘살겠지.

 

그렇지 하지만 그건 자네 자식에겐 잉여 재산일 뿐이야.

아니,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은가.

글쎄 그럴까.

무슨 소린가. 많으면 좋지.

그래, 그렇다고 치지. 하지만 자네 재산을 좀 더 효용 가치 있는 곳에 쓴다면 좋지 않을까? 더 필요한 곳에 더 필요한 사림이.

아니, 내 돈을 왜 다른 놈들이 써. 내 자식들이 써야지.

다른 놈들이 아니라 국가가 환수하는 거야.

 

아니 국가가 왜 내 돈에 손을 데. 그놈들이 뭘 해준 게 있다고. 난 세금 꼬박꼬박 냈어. 그런데 죽으면 다 가져가겠다고?

그래. 자네가 살 동안 국가는 자네가 이 땅에서 살 수 있도록 모든 걸 보장했어. 그러니까 자네가 죽었으니 자네 재산은 국가가 환수해서 좋은 데 쓰겠다는 거지. 국가는 자네의 권리를 침해한 게 없어.

내 재산을 침해한 게 내 권리를 침해한 거잖아.

그럴까. 자넨 죽었는데? 자네 권리도 죽었고.

내가 죽으면 내 마누라나 내 자식들이 내 재산을 상속해서 권리를 행사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자네 재산이 없으면 자네 권리도 없겠네.

그렇지,

자네가 죽었으니 자네 권리는 없어. 다만 재산은 남았지. 그래서 개인이 죽고, 개인의 권리도 사라졌으니 재산은 공익화하겠다는 거야. 뭐가 잘못 됐나.

 

우리나라는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나라야.

맞아. 그러니까 자네가 살아 있을 때는 사유재산을 맘껏 사용해도 돼.

아니, 내가 죽었어도……

손님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사람이 이 땅에 벌거벗고 태어난다. 부모에 의해 양육되고 커서는 자신의 힘으로 먹고 산다. 그러다 죽는다. 벌거벗고 왔듯이 갈 때도 그냥 빈손으로 간다. 이것이 인간의 인생의 원리이다.

 

그래서 그가 죽은 뒤 남은 재산도 그의 것이 아니다. 그는 재화를 벌어들이고 그것을 사용한 뒤 죽었으므로. 그가 죽고 난 뒤 그 재산을 다른 누가 쓸 수 있는가? 무슨 권리로? 그의 미망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과연 그것이 정당한가?

 

사유재산의 한계란 무엇인가? 어떤 재화를 한 번 손에 넣으면 그 사람이 죽더라도 그 재화는 그 사람의 것인가? 만약 그 사람의 것이라면 혹 그의 법적 대리인이 그 재화를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죽었는데 그 재산이 그의 소유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상속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죽으면 한때 그의 재산이었던 것을 그의 미망인이나 자손들이 상속받아야 한다고 당연히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당연한 일인가. 언제부터 그게 당연한 일이었는가.

 

인류의 시작부터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원시시대 누군가 땅을 일구고 살았다. 그리고 죽었다. 그래서 그의 자손들도 그 땅을 일구고 살았다. 그런데 힘센 놈이 들어와 그들을 죽이고 그 땅을 빼앗았다. 그리고 그 땅을 일구고 산다. 그런데 얼마 뒤 더 힘센 놈이 들어와 그를 죽이고 땅을 빼앗고 그 땅을 일구고 산다.

 

자. 그럼 그 땅은 누구의 것인가. 현재 그 땅을 차지하고 있는 힘센 놈이 진정한 그 땅의 주인인가. 아니면 억울하게 빼앗긴 약간 힘센 놈? 아니면 그 전에 살던 별로 힘이 없는 놈?

 

인류 시작부터 당연히 누군가의 소유인 재화란 없다.

 

땅은 그렇다고 치고 요즘은 주식 투자로 돈을 버니까 그것은 개인 소유이고, 그것은 상속되어야 한다? 얼마 전까지는 모든 상속이 인류 최초부터 그래왔다고 주장하다가 이제 와서 주식 투자와 같이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화를 획득할 경우 상속이 당연하다?

 

좋다. 주식 투자로 번 돈을 살아 있을 때 맘껏 쓰다가 죽으면 된다. 죽은 뒤 그 돈은 공익 재산이 되어 다른 곳에 사용된다. 그의 자식들이 그 돈을 써야 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의 자식들도 그의 아버지처럼 주식 투자를 하거나 다른 일을 해서 자기 먹을 것을 벌어먹으면 된다. 굳이 상속할 필요는 없다.

 

재화란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재화란 한동안 누군가 점유하고, 사용할 뿐이다. 그러므로 재화를 점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권리는 한 사람이 살아 있을 때로 한정해야 한다. 땅을 일구던 아버지가 죽었으니 아들이 그것을 물려받아 땅을 갈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상속이 아니라 점유, 사용일 뿐이며 생존일 뿐이다.

 

아버지가 농부이고, 그 자식이 농부라면 그가 그 땅을 계속해서 점유하고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농부인 아버지가 죽은 뒤 자식이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면 그 땅은 농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일구는 것이 마땅하다. 그 땅을 점유하던 ‘아버지’라는 사람이 죽었으니까. 그래서 국가는 그 땅을 환수하여 농부가 직업인데 하지만 토지가 없는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이것이 혼인금지법을 근거로 생긴 상속금지법의 골자이다.

 

그럼, 내가 죽으면 내 집은 어떻게 되는가?

자네 자식들은 이미 출가해서 자기네 집을 소유하고 있어. 그러니 굳이 자식들에게 상속해서 잉여 자산을 만들 필요가 없어. 모름지기 집이란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재산을 늘이기 위한 수단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 그게 마땅하지 않나?

 

그래, 알았고. 그 다음엔?

자네 부인은 자네가 죽은 뒤에도 그 집에서 살 수 있어. 왜냐하면 자네와 결혼한 뒤로 자네와 그 집에서 살아 왔으니까. 자네 부인이 죽은 뒤 그 집은 국가에 환수되겠지.

 

만약, 집이 너무 커서 혼자 살기 버거우면?

그 땐 팔고 작은 집으로 가면 돼?

집을 팔면 엄청난 세금을 낸다면서?

어느 정도는 내겠지. 하지만 적당한 수준이야. 미망인은 집 판 돈을 사용할 권리가 있으니까.

아내가 죽으면 집도 뺏기겠지.

빼앗기는 게 아니라 공공 재산으로 바뀌는 거지.

 

그럼 내가 살아 있을 때 미리 상속해야겠군.

미리 상속하는 건 상속이 아니지. 상속이란 자네가 죽었을 때 발생하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상속이 안 되면 증여라도 미리 미리 해야지.

그래서 증여세법도 개선되어서 이제 증여된 재산의 80%를 세금으로 내게 되었지.

아니 그럼 1억을 내 자식에게 주면 8천만 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단 말인가.

 

그렇지. 개인의 재산은 개인이 사용하는 것이니까 남에게 증여할 수 있어. 다만 증여받은 사람은 애초에 그 사람 것이 아니니까 세금을 많이 내도 상관없지 않을까. 어쨌든 20%는 불로소득을 한 셈이니까.

도대체 그게 뭔가.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거지.

 

노동이 없는 곳에 소득도 없다는 거야. 개인이 노동을 해서 자신의 먹을거리를 책임지고 잘살다가 죽으면 돼. 남에게 줄 것도 받을 것도 없어.

아니, 자식이 남인가.

그래서 혼인금지법이 발효된 것이지. 혼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법적인 문제들은 무효라는 것이지. 지금은 왕정시대가 아니야. 아버지가 왕이라고 내가 왕이 되는 것이 아니야.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재벌이라고 내가 재벌이 되어야 한다는 법칙은 없어. 지금은 개인은 부모와 상관없이 개인의 권리를 가지고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인생을 산다. 이것이 더 합당한 이치이고 법칙이지.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가난하다고 나도 가난해서는 안 되지. 그렇지 않나?

이거야 원 참.

 

요즘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생각하고 행동해왔던 것을 돌이켜 봐야 해. 재벌2세나 3세들이 부모 빽으로 지멋대로 행동하고, 잘 먹고 잘사는 걸 보면서 비판을 많이 해왔어. 그런데 상속을 금지해서 아버지 세대의 재산을 국가가 환수해서 필요한 곳에 쓰겠다면 환영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거야, 재벌 재산은 그렇게 좀 해야지. 하지만 우리 같은 서민은 다르지.

 

왜 달라야 하지? 재벌도 국민이고, 서민도 국민이야. 다 같이 법의 보호를 받고 동시에 법의 제재에 따라야 해. 그러기 위해서 법이 있는 거지.

자네 말을 들으니 도무지 정신이 없군.

 

상속이 없다면 모든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독립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가 그들의 장래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국가가 그들의 장래를 책임지기 위해서 혼인이 금지 되어야 한다.

 

혼인으로 인한 법적 효력이 없어야 국가는 공적인 보호를 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출생자들에 대해 양육을 책임질 수 있는 것이다. 국가는 한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성장해서 직업을 갖고 자신의 경제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양육과 교육을 책임진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양육법, 교육법이 개정되었다.

 

또한 모든 국민이 1인1직업을 갖는 것이 권리이자 의무인 1인1직업법이 발효된 것이다. 더불어 1인1주거법이 시행되어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1주택을 제공하고, 동시에 개인이 1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했을 경우 세금을 부과하고, 그 사람이 죽으면 주택을 환수한다. 1인1직업법, 1인1주거법의 시행으로 개인은 자신의 경제활동과 주거를 해결하고, 상속이나 증여 등 기타 불로소득 없이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이렇게 개인이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더 이상 혼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혈연관계, 그를 통한 재산의 대물림 등은 필요 없는 것이 된다.

 

혼인금지법, 상속금지법, 1인1주거법, 1인1직업법 등의 시행으로 사회는 전혀 다른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잘 사는 사회가 아니라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로.

 

다만 개인의 능력 차이로 인해 개인이 자신의 생존 때 다른 사람과 차이가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은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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