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시] 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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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창작 시] 공원에서

by 브린니 2020. 6. 28.

공원에서

 

 

오후 3시 유월의 태양이 만만치 않다

아파트 단지 중앙공원의 분수는 아직 터지지 않았다

새싹정류장에 아이들이 오려면 시간이 좀 남았다

뭔가를 기다리는 몇 분에서 한 시간

초조와 불안과 기대가 뒤섞이며

일곱 가지 감정이 공존하는 시간

그 시간의 틈 사이에

야쿠르트 아줌마가 앉아 있다

전동카트를 앞에 두고

휴대전화를 켜놓고 눈을 내려 뜨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데

아줌마를 바라보는 사람도 많다면 적다

사는 것은 지난하다

알아채지 못했을지라도 40년 동안 동네 곳곳을

그녀들이 지나갔다

사는 것은 배고픔의 경제다

퍽 오래 살아도 사는 것에 면역이 생기지 않는다

노인들은 바이러스 때문에 밖을 나설 수 없다

닭을 서른 마리만 고아 먹으면 살 수 있을 텐데, 라고 말한 사람은 스물 아홉에 죽은, 소낙비와 동백꽃, 봄봄을 쓴 소설가 김유정이다

아줌마는 유산균 요거트에 장기능과 면역성을 얹어서 판다

치맥에 길들어진 사람들에게 딱이다

아줌마는 거의 불멸한다

마케팅 전략이 수없이 바뀌어도 그녀는 매일 동네를 누빈다

집에서 기다리는 식구들이 있다

저녁밥은 일곱시부터 지어야 한다

밥상은 기다릴수록 맛이 난다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여름 해는 길고

공원이 붐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다행이다, 통 속의 물건들이 다 팔리고

전동카트는 아파트 단지를 벗어날 것이다

조금만 더 버티면 호시절인데

폭우처럼 잠이 쏟아진다

오, 축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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