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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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인생공부

by 브린니 2023. 7. 23.

인생공부

 

 

카페에 일가족이 들어왔다

정확하게 13명이었다

불길했다.

숫자부터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소리까지.

그들은 경상도 사투리로 13잔의 차를 주문하고

드디어 케이크를 꺼내 생일 잔치를 벌였다

그들은 나름 교양있었다

가족들은 웃으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해피버스데이 투 유 해피버스데이 투 유

노래는 들리지 않았다

침묵하는 생일 축하송

박수소리는 작지만 잘 들렸다

촛불은 할머니가 껐다

그녀의 생일이었나 보다

무슨 이유인지 나갔다 들어온 식구 둘 셋이 늦게 자리했다

다 끝났다며 다른 가족들이 놀렸다

가족들은 케이크를 분주하게 나눠 먹었다

다들 웃고 있어서 행복해 보였다

SNS 시대에 여럿이서 웃고 떠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장마철이라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초록이 더 파랬다

카페에는 이런저런 장르의 이국 노래가 볼륨을 높여 흘러나왔고

아내는 내일 수업 준비를 했다

카페 멜버른은 생강라떼가 최고다

아메리카노를 곁들여마시면 더 좋다

커피 이름이 왜 아메리카노일까 하는 질문은 언제나 질문으로 그친다

다 그럴만 하니까 그럴 것이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거의 빠지지 않고 이곳에서 공부를 한다

일주일 동안 가장 고요하고 평온한 시간이다

시를 한 편 쓸 수도 있고

소설을 읽거나

유튜브 시청도 한다

토요일에 봤던 오페라 감상평을 쓰기도 한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봤던 기억도 몇 글자 적는다

바로 옆에 자리 잡은 가족들이 들왔을 때 우리는 걱정했다

누군가 떠드는 건 정말 질색이었다

우리가 이곳에 오는 이유는 손님이 적고 조용하다는 데 있다

절대적인 이유였다

우리는 누군가 우리의 일상을 깨뜨리는 게 싫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는 게 정말 싫다

아무런 상관없는 이야기라도 들려오는 게 싫다

그들은 심지어 영어로 떠들기도 한다

중간중간 들리는 잉글리시야 말로 귀에 거슬린다

걱정했던 대로 13명의 가족은 시끄러웠다

이상의 시 까마귀에서처럼 13명의 아해가 달려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이 행복하다면 그만이다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다

인생은 남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인지도 모른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우리도 둘이다

저쪽 집의 할아버지는 외국영화배우처럼 잘 생겼다

아메리카노가 진한지 물을 더 부어 마셨다

케이크는 사람들에게 3/2가량 먹히고 시체가 되었다

초콜릿과 초코비스킷 토핑은 아무도 먹지 않았다

부드럽고 녹아드는 살만 파먹은 것이다

나름 상류층 사람들 같다

그럼 좀 나은가 아니면 더 역겨운가

아니면 카페에 앉아 우리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다른 가족들의 행복을 비웃는 일이 더.

아니다 그렇지 않다

태양과 비는 신의 은총처럼 모두에게 공평하다

카페 멜버른에 오는 손님들은 누구나 일요일 오후의 평화를 즐길 권리를 가진다

그들의 깔끔한 생일 기념 티타임을 축복하리라

비록 할머니는 식구들의 이야기에 끼지 못하고

할아버지는 창밖을 응시하면서 정물화의 주인공처럼 앉아 계시지만.

비가 잠시 그치면 나무들이 성난 듯 더 짙게 일어선다

물을 잔뜩 먹은 무궁화가 절정으로 치닫는다

생을 긍정하듯 희고 분홍빛 얼굴을 끄덕인다

때로 너무 조용한 것보다는 가끔 떠들썩한 것도 괜찮다

일상은 유리처럼 가끔 깨질 때 더 날카롭게 빛을 낸다

장마 끝에서 햇빛은 더

 

그들이 떠났다

졸음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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