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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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by 브린니 2020. 10. 23.

*평신도 성경 묵상은 평신도에 의한 평신도를 위한 묵상입니다. 화석화된 동어 반복의 신학적 용어들은 때때로 우리 삶의 부조리한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제적인 깨달음과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나눔을 하기 원합니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태복음 13장 24절~30절)

 

 

가라지의 비유 말씀은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우리가 없는 영적 전쟁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시고, 전쟁에서 취해야할 우리의 태도 역시 지시하고 계십니다.

 

분명 좋은 씨를 뿌렸는데도 사람들이 때에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갑니다. 말씀을 대할 잠든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언가 일이 되고, 모임 가운데 분란을 일으키는 이들이 생길 , 마음이 착한 사람들은 가라지가 자란 것을 보니 내가 영적으로 게을러 잠들었기에 이런 일이 생겼구나, 하면서 자책합니다.

 

하지만 밤이 되어 드는 것은 사람에게 당연한 일이기에 가라지가 생긴 것에 대해서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과도한 짐을 스스로에게 지워서는 됩니다.

 

잠들었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상황이고,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원수가 가라지를 뿌린다는 것은 우리를 조금은 자유하게 해줍니다.

 

원수의 활동에 대해 혹시 잘못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을 갖지 않고 대하는 것은 훨씬 여유를 갖게 합니다. 여유있는 태도는 원수의 책동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필요한 자세입니다.

 

주인이신 예수님은 원수가 이렇게 했다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가라지를 뽑기를 원하시느냐고 묻습니다.

 

우리는 원치 않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해 보려는 마음이 앞섭니다. 특히 좋지 않은 , 평화를 깨뜨리고 분쟁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빨리 뿌리를 뽑아 해결하고 싶은 욕망이 샘솟게 됩니다.

 

그러나 주인이신 예수님은 가만히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시는 것인데, 실제로 가라지는 곡식보다 훨씬 뿌리가 강해서 가라지를 뽑으려 하면 옆에 있는 연약한 곡식들도 같이 뽑히고 만다고 합니다.

 

어떤 모임이나 단체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특히 평안을 좋아하고 바르지 못한 행동을 보면 참을 없어하는 사람들은 이들을 가만두지 못하고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하지만 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면 차라리 사라져 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우리는 계속되는 불편함을 견디기 힘든 성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르십니다. 마음에 걸리고 불편하고 보기 싫고 신경에 거슬리는 짓을 계속 하는 누군가를 묵묵히 견디라고 하십니다. 그것을 견디는 시간 동안 연약한 곡식들도 알차게 자랄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우유부단하고 결단력 없어 보이지만 가라지를 보면서도 계속 기다릴 있는 힘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힘을 지닌 사람은 진정 성숙한 사람인 같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흐른 추수 때가 되면, 예수님은 드디어 가라지를 먼저 거두어 불사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거둔 가라지는 단으로 묶어야 정도로 많습니다. 이것이 순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가라지가 포기 보일 뽑아버려야 같지만, 예수님은 그대로 두라고 하셨고, 그대로 두니 가라지가 단으로 묶어야 만큼 많아진 것입니다.

 

어떤 이는 그러게 진작에 한두 포기 자랄 뽑아버렸어야 한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가라지가 늘어날 것도 아셨을 테고, 동시에 곡식도 풍성하게 여물어갈 것도 아셨을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추수 때에 가라지는 하나도 없고 알곡만 가득했으면 좋겠지만, 그게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인 같습니다.

 

우리 눈앞에 놓인 밭에는 곡식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게 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자유함과 동시에 기나긴 인내를 요구합니다.

 

가라지가 자라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가라지가 자라는 꼴을 보고 있느라 분통이 터지는 것을 참는 것은 내가 감당해야 일입니다.

 

우리 인생이 이런 같습니다. 알곡처럼 좋은 일들만 가득하면 좋으련만 필연적으로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것을 보아야 하고 그것을 거두어 불사를 날이 오기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각오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가라지보다많은 곡식이 자랐고, 그것은 거두어 하늘 곳간에 넣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무엇도 해할 없는 곳에 나의 눈물과 정성이 고이고이 거두어 들여진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가라지를 견뎌야겠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해주시는 인생의 비밀과 인내의 해결책이 말씀 안에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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