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 진짜 교회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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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장편소설 연재] 진짜 교회 (23)

by 브린니 2020. 8. 26.

진짜 교회 23

 

 

 

 

 

“느헤미야 형제가 말씀하신 것 가운데 가장 핵심은 대형교회가 작은 교회들에게 성도들을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총회 총무를 맡고 있는 이경수 목사가 물었다.

 

“물론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전제가 있어야겠지요. 여러분이 섬기고 있는 교회의 성도들을 자기 양떼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얼마 전 어느 대형교회 목사님께서 2만 명의 성도 가운데 1만 명을 지역교회들로 파송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양떼들을 다른 교회로 보내려고 하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입니다. 그분의 인간적인 정이나 아쉬운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우리 교회들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의 가장 문제점은 교회가 그리스도가 주인이 아닌 목회자가 주인이며 성도들 또한 그리스도의 양떼가 아닌 목회자의 양떼라는 것입니다.”

 

“그게 어디 말이 그런 것이지 실제로 자기 성도라고 한 것인가요?”

지역 노회장을 맡고 있는 김인걸 목사가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자기 양떼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실제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왜 대형교회를 꿈꾸시나요? 만 명, 이만 명, 많은 성도들이 모이면 다 자기 양떼라고 여기기 때문 아닙니까. OO교회 몇 만 성도. 이런 타이틀을 얻고 싶기 때문 아닙니까?”

느헤미야 형제가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건 그렇다 치고, 형제님, 대형교회를 나누어 지역교회를 살리자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시나요? 너무 인본적인 생각 아닙니까?”

선교부장을 맡고 있는 고수현 목사가 물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은 단 한 가지입니다. 눈을 감고 기도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게 아닙니다. 일단 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하시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습니다.”

“모든 운동들이 처음엔 그럴싸하다가 끝엔 흐지부지 되는 걸 많이 봐왔지 않습니까? 잘 된다고 다 하나님의 뜻인가요?”

 

“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해보지도 않고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먼저 따지는 것은 별 소득이 없는 일이 아닐까요? 만약 하나님의 뜻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있다면 그것을 실행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몰라도 비록 인간의 생각이라고 할지라도 지금 이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안을 갖고 계신 분은 지금 말씀하십시오. 저는 그것이 인본주의니 뭐니 따지지 않고 좋다고 생각되면 그 방법을 따를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올바른 생각을 막지 않으시며 인간이 올바른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올바르게 실행한다면 하나님께서도 기쁘게 역사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우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입니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말입니까?”

“단순히 성도를 다른 지역교회로 파송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문제는 교회가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먼저 변화해야 합니다. 목회자들이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왕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대형교회이든 작은 교회이든 개척교회든 목회자가 왕노릇하고 있습니다.

 

목회자가 변하면 교회가 변합니다. 모든 교회의 성도들이 제발 우리 교회 목사님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목회자들은 청와대에 들어간 대통령 같습니다. 귀 막고, 눈 막고, 세상과 담을 쌓고 있습니다. 결코 다른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다들 한국 교회가 병들었고, 이래서는 안 된다고 말들은 하면서 자기 교회에서는 단 한 가지도 바꾸지 않습니다. 교회가 개혁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데요.”

“우리도 할 만큼 하고 있어요.”

“더 이상 뭘 얼마나 더 해!”

목회자들이 다들 한 마디씩 했다.

 

“먼저 생각을 이렇게 바꾸십시오. 예전에 했던 것은 더 이상 하지 말자. 예전 것들은 다 실패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자.”

 

“아니, 수천 년 동안 해왔던 것을 어떻게 바꿔요?”

“교회는 전통이란 있어요.”

“오히려 전통이 무너져 가고 있는 게 문제라니까.”

 

“그럼 하나 씩 해봅시다. 여러분 목회자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니 역으로 제도와 방식을 바꿔 봅시다. 첫째 주일 대예배를 제외하고 모든 예배에 평신도들이 말씀을 나눌 수 있도록 기회를 줍시다. 만인제사장이라고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시지 마시고요.”

 

“아니, 어떻게 일반 성도들이 강단에 서서 말씀을 전합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목회자들이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았지만 느헤미야 형제는 계속 말을 이었다.

 

“둘째, 예배를 대폭 줄이십시오. 주일 예배를 7부씩 드리는 교회가 있는데 1번이나 2번으로 줄이십시오. 자연히 성도들이 가까운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저녁 예배에는 필히 평신도가 말씀을 나누도록 권장하시고, 새벽기도회는 예배를 아예 없애고 자유롭게 기도할 분들만 나와서 기도하게 하십시오. 목회자들도 피곤하면 푹 주무십시오. 금요철야예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매주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부활절을 앞둔 고난주간이나 특별히 기도가 필요할 때만 모이십시오. 물론 성전 문은 열어두고 기도하러 오시는 분들을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예배라는 타이틀을 빼자는 것입니다. 예배 많이 드려서 우리 교회가 되살아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하지만 예배가 오히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삶을 죽이고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미친 것 아니야?”

“그만 내려와!”

“어디서 저런 이단 사이비를 데려와서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총회장이 나섰다.

 

“느헤미야 형제의 말씀이 좀 래디컬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큰 충격을 주지 않으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고 생각해서 좀 세게 말씀하는 것이니 좀 들어봅시다. 자, 형제님 계속하시죠.”

 

“세째, 교회의 행사와 모임 역시 대폭 없애야 합니다. 저는 일단 주일 예배 1회, 구역 모임 1회로 모든 예배와 행사와 모임을 끝내겠습니다. 주일에 모여서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돌아가면서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에 대해 서로 나누면 족합니다. 평일 중 하루를 택해 구역 모임을 갖는데 현재처럼 구역공과를 읽거나 목사님 설교를 반복해서 복습하거나 구역예배를 하고, 헌금을 내고 그런 식의 예배는 하지 마십시오. 모여서 식사를 하거나 영화나 공연을 같이 보러 가거나 공원을 산책하거나 캠핑을 같이 가서 친목을 나누면서 깊은 교제를 갖기를 바랍니다.”

 

“이거 원. 완전히 놀자판이구먼.”

“예배하지 않는 교회가 교회야!”

“죽은 교회를 완전히 말살시키겠다는구먼.”

 

“우리는 그동안 유대인 못지않게 예배 드려왔습니다. 주일에 최소 2번, 새벽기도 7회, 수요일 금요일 각 1회, 어느 선교회 소속 교회들은 매일 24시간 릴레이 기도 모임을 갖기도 합니다. 예배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의 본분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하고 다른 것을 할 수 없게 된 것이 문제입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호세야 시대 수많은 제사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시대 바리새인들은 이사야 시대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면서 제사하고 율법 준수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독사의 자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현재 우리를 보십시오. 예배에 목숨을 걸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과연 무어라고 말씀하실까요? 어느 선교회에서는 이사야 시대나 바리새인들 제사와 율법에 얽매이는 행위가 잘못되었다면서 그보다 더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겠다고 몇 시간씩 예배합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선교회 역시 예배 말고 다른 것은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하고 은혜받고, 그것이 왜 나쁩니까? 그러나 이미 우리는 예배하고 은혜받는 일에 익숙합니다. 거기서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시대 성도들은 지쳐 있습니다. 세상일에 지치고 돈에 지쳐 있습니다. 교회의 예배와 행사와 모임에 지쳐 있습니다. 성도들에겐 안식과 쉼이 필요합니다. 쉽게 말해 힐링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예배와 행사와 모임으로 힐링할 시간이 없습니다. 심지어 교회마다 힐링한답시고, 각종 프로그램을 만들어놓고 교회로 성도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그 힐링 행사의 대부분은 연사를 모셔놓고 듣게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성도들은 듣는 것에 지쳤습니다. 자, 힐링 행사를 하시려거든 성도들에게 자유시간을 주시고 마음껏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목사 욕, 교회 욕 맘껏 하게 시간을 허락하십시오. 성도들이 진짜 힐링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헛기침 하는 사람들도 있고, 입을 꾹 다물고 악에 바치는 것을 참는 사람도 있었다.

 

“역시, 형제님 말씀은 인본적일 뿐만 아니라 실현 가능성도 없는 것들뿐이군요.”

앞줄에 앉은 나이 지긋한 목사가 말했다.

 

“이창식 목사, 나는 이번 주부터 해보려고 하는데요.”

김영수 목사가 말했다.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이창수 목사가 물었다.

 

“이번 주부터 새벽기도회 안 하려고요.”

“뭐라고요?”

 

“다음주엔 수요일 예배는 평신도가 집도하게 하고, 금요일 철야 때는 청년들이 알아서 하도록 하겠어요. 찬양단이 있는데 실력 발휘할 시간이 없다는구먼. 맘껏 해보라고 해야겠어요.”

김영수 목사가 농담을 하듯 말했다.

 

“목사님, 지금 농담이 나오십니까?”

“농담이 아니에요. 우린 설교를 너무 많이 했어요. 이젠 평신도가 제사장이 되어야 해요. 사실 예배나 행사, 모임 너무 많았어요. 제자훈련도 전문 강사가 하지 말고, 성도들끼리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진짜 제자가 될지 이야기하고 실행해봐야 합니다.”

 

“김영수 목사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총회장 오경욱 목사가 나섰다.

 

 

“우리 총회부터 예배와 행사나 모임을 줄이는 방안을 마련하고, 평신도가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교회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제 담임목사 혼자서 일주일에 10번씩 설교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목회자에게도 큰 짐일 분더러 듣는 성도들에게도 고역입니다. 우리 집사람도 내 설교 듣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총회장 말에 몇몇 사람들이 웃었다.

 

“자자, 잠시 쉬었다가 합시다.”

총회장이 휴식을 제안하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섰다. 느헤미야 형제를 향해 달려오는 사람도 있었고, 끼리끼리 모여 성토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스티그마, 아포리아. 지금이 그 상황이었다.

 

 

 

스티그마 Stigma(독일어) : 우리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바람직하지 않는 특이이성을 말한다. 역설적으로 스티그마의 본질은 특이성 자체에 있지 않고, 우리들의 기대에 따르지 않는 자를 스티그마의 범주에 끼워 넣어 그에게 부정적인 반작용을 가하는 데에 있다.

 

아포리아 Aporia(그리스어) : 통로가 없는 것, 길이 막힌 것, 해결의 방도를 찾을 수 없는 난관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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