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리어카 위에 꽃상여를 올려놓고
밀고 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비상등을 켜고
중앙선을 넘어
그들을 앞지른다
평생을 열매 만드는 공장,
과수원이 옆으로 펼쳐진다
물속처럼 드러나는 하늘을
룸 미러를 통해 쳐다본다
나는 지금,
어디로 밀려가고 있는가
뒷좌석 뒷유리 밑에서
바람이,
책장을 찢어발기고 있다
이제 나에게는
길에서 혼자 죽을 수 있는
독단도 남지 않았다
급브레이크를 밟은 타이어 자국이
내 흐릿한 의식 속에 휘어진,
두 줄의 검은 혓바닥을 처넣는다
―이윤학
【산책】
언젠가, 어디선가, 불현듯, 갑자기, 문득, 죽음이 코앞에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어떤 끌림이 한 순간 죽음 쪽으로 몰아가는 수가 있다.
죽음으로 한 발짝 급히 들여놓는 순간이 있다.
자기도 모르게 어떤 이끌림, 무엇에 홀려서.
죽음을 재촉하는 소리? 등을 미는 어떤 힘? 스스로 옮겨 놓은 발걸음?
그러나 그 순간 정신을 차리고 브레이크를 밟는다.
정신을 차렸다기보다는 그 순간 역시 무의식적으로, 살겠다는 욕구가 무의식적으로.
죽음 충동과 살겠다는 욕동의 정면충돌, 혹은 비껴감.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순간의 (무의식적) 선택이 삶과 죽음을 갈라놓는다.
길에서 죽음을 맞는 것을 객사客死라고 한다.
손님의 죽음이란 뜻인가.
손님처럼 집이 아닌 곳에서 죽었다는 뜻인가.
길 위에서 죽는 죽음은 개죽음이란 뜻이렷다.
이제 나에게는
길에서 혼자 죽을 수 있는
독단도 남지 않았다
길에서 죽을 수 있는 독단이란 어떤 것일까.
언제는 그런 식의 독단이 통했던 적이 있었단 말인가.
인생에?
세상에!
단 한 번도 죽을 수 있는 독단이든 혹은 살겠다는 독단이든 독단이 통했던 시절이 있었던가.
길 위에서 혼자 죽을 수 있는 ― 객사의 특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평생 길 위를 떠돈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이다.
길에서 살다가 길바닥에 버려지는 삶,
그 삶을 살 수 있어야 길에서 죽을 수 있다.
삶이 아닌 삶 ― 삶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삶을 살아야 그렇게 죽을 수 있다.
어쩌면 리어카에도 상여가 실릴 수 없는 삶.
리어카에 꽃상여를 싣고 가는 사람들,
조용히 차를 멈추고 그분들을 향해
조의를 표하라!
길 위에 살아계신 분들과 이제 막 그 장소를 떠나신 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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