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페르난두 페소아 <양 떼를 지키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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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페르난두 페소아 <양 떼를 지키는 사람>

by 브린니 2020. 7. 28.

양 떼를 지키는 사람*

 

                                              알베르투 카에이루*

 

1

나는 한 번도 양을 쳐 본 적 없지만,

쳐 본 것이나 다름없다.

내 영혼은 목동과도 같아서,

바람과 태양을 알고

계절들과 손잡고 다닌다

따라가고 또 바라보러.

인적 없는 자연의 모든 평온함이

내 곁에 다가와 앉는다.

하지만 나는 슬퍼진다

우리 상상 속 저녁노을처럼,

벌판 깊숙이 한기가 퍼질 때

그리고 창문으로 날아드는 나비처럼

밤이 오는 걸 느낄 때.

 

그러나 내 슬픔은 고요하다

그건 자연스럽고 지당하니까

그건 존재를 자각할 때

영혼에 있어야 하는 거니까

그리고 두 손은 무심코 꽃을 딴다.

 

굽은 길 저 너머 들려오는

목에 달린 방울 소리처럼,

내 생각들은 기뻐한다.

유일하게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기쁘다는 걸 아는 것,

왜냐하면, 몰랐더라면,

기쁘고 슬픈 대신

즐겁고 기뻤을 텐데.

 

생각한다는 건

바람이 세지고, 비가 더 내릴 것 같은데

비 맞고 다니는 일처럼 번거로운 것.

 

내게는 야망도 욕망도 없다.

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 아니다.

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

 

그리고 이따금 상상 속에서,

내가 어린 양이 되기를 소망한다면,

(또는 양 전체가 되어

언덕배기에 온통 흩어져

동시에 수많은 행복한 것들이 된다면)

그 이유는 단지 내가 쓰고 있는 그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해 질 무렵, 혹은 햇빛 위로 구름이 손길을 스치며

초원에 적막이 흐를 때

 

내가 시를 쓰려고 앉을 때나

길이나 오솔길을 산책하며

생각 속 종이 위에 시구를 적을 때면,

손에는 지팡이가 느껴지고

언덕 꼭대기에

나의 옆모습이 보인다.

내 양 떼를 보고 또 내 생각들을 보는

혹은 내 생각들을 보고 내 양 떼를 보는,

그리고 뭐라고 했는지 못 알아듣고도

알아들은 척하는 사람마냥, 애매하게 미소 짓는.

 

나는 나를 읽을 모든 이에게,

챙 넓은 모자를 들어 인사한다

마차가 언덕 꼭대기에 오르는 순간

문간에 선 나를 볼 때.

인사하면서 기원한다, 해가 나기를,

또 비가 필요하면 비가 오기를,

그리고 그들의 집에

열린 어느 창문가에

나의 시를 읽으며 앉아 있을

아끼는 의자 하나가 있기를.

그리고 내 시를 읽으며 생각하기를

 

내가 자연적인 무언가라고 ―

가령, 그 그늘 아래 아이들이

놀다 지쳐, 털썩 주저앉아

줄무늬 셔츠 아래로

뜨거운 이마의 땀을 닦는

오래된 나무 같은 것.

 

                                ―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포르투갈, 1888-1935)

 

【산책】

 

생각한다는 건

바람이 세지고, 비가 더 내릴 것 같은데

비 맞고 다니는 일처럼 번거로운 것.

 

내게는 야망도 욕망도 없다.

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 아니다.

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이 가장 쉽게 하는 일 가운데 하나다.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이 가장 어려워 하는 일 가운데 하나다.

생각은 1차원, 2차원, 3차원 n차원까지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러 늘어진다.

그래서 생각은 자기 생각에 갇히기도 한다.

생각은 비가 더 내릴 것 같은데 비 맞고 다니는 일처럼 번거로운 것이다.

 

시인이 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감각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한 사람이 홀로 있는 방식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사실 외롭다는 증거니까.

좀 더 있어 보이는 표현으로는 고독하기 때문이다.

혹은 시인은 일부러 고독을 선택한다.

시는 홀로 있는 방식이니까.

 

시인은 양치기가 되어 본 적이 없으나

마치 양떼를 몰아본 것과 같다.

그의 세계에서는 불가능이란 없다.

그는 상상 세계에 살고 있으니까.

 

시인은 바람과 태양을 알고 계절들과 손잡고 다닌다.

인적 없는 자연의 모든 평온함이 그의 곁에 다가와 앉는다.

 

시인은 우주와 자연과는 늘 친구처럼 지낸다.

자연은 시의 재료이며 도구이며 언어이며 리듬이며 호흡이다.

시인이 홀로 있을 때 그의 곁에는 자연이 있다.

항상.

언제나.

그를 둘러싸고 있다.

목동이 양과 함께 풀밭에 누워 있듯이.

 

나는 슬퍼진다

우리 상상 속 저녁노을처럼,

벌판 깊숙이 한기가 퍼질 때

그리고 창문으로 날아드는 나비처럼

밤이 오는 걸 느낄 때.

 

그러나 내 슬픔은 고요하다

그건 자연스럽고 지당하니까

그건 존재를 자각할 때

영혼에 있어야 하는 거니까

 

시인은 저녁노을이 물들고, 벌판 깊숙이 한기가 퍼지고, 어두운 밤이 오면 슬픔을 느낀다.

그의 슬픔은 들뜨거나 넘치지 않고, 고요하다.

존재를 느낄 때 영혼에 고요하게 들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존재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요하게 느끼는 사람이다.

 

 

* 양 떼를 지키는 사람 : 49개의 시들로 묶인 한 편의 시

* 알베르투 카에이루: 페르난두 페소아의 수많은 필명 가운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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