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김영승 <반성 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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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김영승 <반성 608>

by 브린니 2020. 7. 27.

반성 608

 

 

어릴 적의 어느 여름 날

우연히 잡은 풍뎅이의 껍질엔

못으로 긁힌 듯한

깊은 상처의 아문 자국이 있었다

 

징그러워서

나는 그 풍뎅이를 놓아주었다

 

나는 이제

만신창이가 된 인간

그리하여 主는

나를 놓아주신다

 

                                        ―김영승

 

 

【산책】

주님은 상처가 많은 인간, 죄가 많은 인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오라고 부르신다.

만신창이가 된 인간은 놓아주실까?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된 인간이라고 포기하실까?

 

주님은 더 악착같이 그를 좇을 것이다.

그리고 너는 내 아들이다, 하고 명명할 것이다.

참 부담스러운 일이다.

 

자유로운 영혼, 시인에게는 더 더욱 원치 않는 일이다.

제발 나를 좀 내버려둬요, 좀머 씨가 울부짖을 일이다.

 

만신창이가 되고 돌아온 탕자를 아버지는 받아주었다.

만신창이가 될수록 주님은 더 반겨맞으신다?

 

정말, 뭣 됐다.

놓아줄 줄 알았는데 된통 걸렸다.

 

이토록 아름다운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어떻게 신께서 버려둘 수 있겠는가.

기다리시오, 시인. 곧 주님께서 부르실 테니.

 

우연히 잡은 풍뎅이의 껍질에 못으로 긁힌 듯한 깊은 상처의 아문 자국 때문에 놓아주고 만 마음씨 여린 당신,

주님은 당신을 콕 집어서 꼭 잡고 계십니다.

 

부디,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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