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성경 묵상은 평신도에 의한 평신도를 위한 묵상입니다. 화석화된 동어 반복의 신학적 용어들은 때때로 우리 삶의 부조리한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제적인 깨달음과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나눔을 하기 원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3절)
예수님은 광야의 시험을 통과하신 후에 제자들을 부르시고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셔서 이 말씀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그냥 ‘가난한 자’라고 나오는데, 마태복음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나옵니다. 어떤 학자들은 마태가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고자 ‘심령’을 넣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가난한 자’라는 말은 헬라어로 ‘프토코스’이며 히브리어로 ‘아나임’인데, 그 뜻은 부자나 권력자들의 경제적 수탈과 사회적 억압에서 자기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나아온 사람들을 상상해 보십시오. 로마의 식민치하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말 그대로 경제적 수탈과 사회적 억압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가난한 자’란 바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또 이 단어의 의미에는 가난, 애통, 주리고 목마름, 핍박받음 등 모든 불행한 환경의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죄에 대한 인식이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들은 인간의 죄성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로마 식민지가 아닌 현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매우 자유로운 상태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역시 우리에게도 가난과 애통과 핍박받음의 문제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다들 현대식으로 잘 지어진 집에서 차를 몰고 다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매달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는 빚더미 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달만 수입이 들어오지 않아도 당장 연체가 되어야할 형편에 처해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두 달 동안 사회적 격리를 하자 수많은 실직자가 생겨났고, 나라에게 국민 모두에게 돈을 주어야 할 만큼 우리의 삶은 불안하고 여유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사람들의 기반없는 위험한 삶의 실체가 드러나고 만 것입니다.
왜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살아가야 하는가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죄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안정된 직업은 점점 줄어들고 계약직, 알바, 영세 자영업자들의 수가 훨씬 더 많아져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불안 속에 살게 한 힘을 무엇입니까?
설국열차의 앞칸에 탄 소수의 자본가들과는 달리 대다수의 서민들은 설국열차의 뒷칸에서 안정감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불안한 사회의 형태는 바로 인간의 죄성이 낳은 이기심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행을 완전하게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인간 세계에서 찾기 힘듭니다. 그 방법을 찾으며 세상의 절반이 공산주의 혁명을 해보았다가 다시 자본주의로 돌아오기도 한 것입니다.
과연 인간에게는 죄성을 이기 수 있는 거룩함은 없을까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죄성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어서 천국이 그의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 불행에 대한 완전한 치유는 인간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거룩함에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인데 어떻게 거룩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신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그의 삶이 바로 인간이 거룩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른 인간을 대신해서 죽는 죽음, 그것이 예수님이 보여준 거룩함이었습니다.
나는 죄 많은 다른 인간, 누구를 대신해서 참고 견디며 오늘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아주 힘든 하루지만 그것이 거룩한 천국에 이르는 길입니다.
아마도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그 누군가를 사랑으로 덮으며 오늘을 견디고 살아가는 순간이 가장 예수의 거룩함을 닮은 순간인지도 모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어서 예수님을 닮아 예수의 삶을 삽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광이 임하여 천국이 임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누군가를 위하여 희생한 순간 그곳에 평화가 있고 그곳에 웃음꽃이 피어나는 것을 말입니다. 그곳을 하나님은 천국이라고 부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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