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성기던 머리칼이 겸손하게 고개를 숙인다
이마가 더 빛나고 너그러워진다
바람이 불면 세차게 뻗쳐오르더니
이제 바람의 반대쪽으로 드러눕는다
가시와 엉겅퀴도 뿌리가 다 드러나 기진맥진하고
단단하던 돌들도 부스러진다
푸른 어깨가 파도의 끄트머리처럼 주저앉고
뻣뻣하던 무릎이 고요해진다
늙다, 자기 인생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알게 되다
수치를 가르치는 나이듦
사는 것이 모욕이라는 것쯤
젊은들 모르랴
이가 닳아서 먹을 수 없다
쓴 맛을 느낄 수 없다
행복한 단맛뿐
추억이 주는 달콤한 향락 속에서
나는 죽어가고 있다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과거를 상상하며 미래로 빠져든다
늙은 남자에겐 내일이 전부다
오늘 잘 살았다
고맙다
'창작글(시, 짧은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 (0) | 2020.05.28 |
---|---|
벽 (0) | 2020.05.28 |
416 꽃들에 바침 (0) | 2020.05.27 |
눈 내리는 날 (0) | 2020.05.25 |
커피와 담배 (0) | 2020.05.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