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조용미 <내 가슴속에는 불타는 칼이>
본문 바로가기
독서 리뷰

[명시 산책] 조용미 <내 가슴속에는 불타는 칼이>

by 브린니 2020. 7. 10.

내 가슴속에는 불타는 칼이

 

 

새들이 은사시나무 위에 지은 허공의 집은

위태로워 보인다

저 위태로움이 새들을 지켜줄 것이다

 

아득한 곳까지 마음의 문을 열면

이 혼미함을 걷어낼 수 있을까

아득한 곳까지

마음의 문이 열리기나 할까

 

내 가슴속에는 불타는 칼이,

 

파리지옥풀의 가시돌기 안테나에 걸려

안에 갇힌 파리는

서서히 녹아서

파리지옥풀의 몸이 된다

 

땅덩어리가 뿜어내는 숨결을 바람이라고 하지

그것이 불지 않으면 별일 없이 고요하지만

한 번 불면 수많은 구멍에서 온갖 소리가 나지

 

내 가슴속에는 불타는 칼이

 

                                                     ―조용미

 

 

【산책】

가슴속에서 불타는 칼이 휘젓고 다닌다면 그 가슴은 얼마나 쓰릴까.

 

칼에 그을린 가슴속은 불의 길이 나고

거기로 붉고 검은 피가 쏠린다.

심장에서 퀄퀄퀄 피가 넘친다.

 

과연 살 수 있을까.

 

어찌 보면 불타는 칼이 몸 안에 있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칼이 밖에서 목을 치거나

팔을 베거나

배를 찌른다면

목숨을 부지 할 수 없을 것이다.

 

칼을 가슴에 품고, 칼을 가슴의 일부로 끌어안고,

끝까지 살아가려고 한다.

 

파리가 파리지옥풀의 일부가 되듯이

불타는 칼을 가슴에 품어서

칼이 나를 찌르고 벨지라도

다른 사람을 치거나 베거나

상처 입히지는 않는다.

 

사랑했던 사람 때문에 내 가슴엔 불이 타고, 불타는 칼이 살지만

그 칼로 사랑했던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위태롭게 살지만 위태롭기에

균형을 잡고

칼 위에서

칼을 타듯이

 

위태롭게 살고 있다.

사는 것보다 더 큰 복수는 없고,

더 큰 사랑도 없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