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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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by 브린니 2020. 7. 7.

*평신도 성경 묵상은 평신도에 의한 평신도를 위한 묵상입니다. 화석화된 동어 반복의 신학적 용어들은 때때로 우리 삶의 부조리한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제적인 깨달음과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나눔을 하기 원합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태복음 10장 29절~31절)

 

세상을 살면서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닥칠 때마다 말씀이 생각납니다. 참새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데, 이런 험한 일이 일어났을까?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란 말인가? 도대체 ?

 

우리가 바라는 것은 목자 되신 주님의 양이 되어 만한 물가의 푸른 초장에 누워 그가 베푸시는 상을 받는 것인데, 실제 우리의 삶은 가시밭길을 걷는 힘들게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겪는 험한 문제들을 거꾸로 오해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가 살펴보려 합니다.

 

우선 말씀이 등장하는 앞뒤 문맥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시고 전도여행을 떠나도록 하시는 상황입니다.

 

이리 가운데 양을 보내듯이 어려운 길을 보내시면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과 그들이 공회와 회당에서 채찍질을 당하며, 총독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며 박해를 받게 것을 말씀하시며 두려워말라고 위로하고 용기와 믿음을 북돋우는 말씀의 연장 속에서 참새 비유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땅에 떨어진 참새는 살면서 우리에게 일어난 비참하고 어려운 일이라기보다는, 바로 우리 자신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힘겨운 일은 우리를 믿음에서 떨어지게 하는 채찍질에 가깝습니다. 채찍질과 박해가 현재 우리 속에서도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 당시의 박해와 지금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운 일들은 종류와 형태가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를 믿음에서 떨어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참새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떨어질 없는데, 내게는 이렇게 끔찍하고 험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냐 하면서, 마치 하나님이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것입니다.

 

그러나 참새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자신을 보잘것없는 참새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지만, 그렇게 생각해볼 말씀을 이해할 있습니다.

 

참새는 마리가 앗사리온에 팔릴 정도로 보잘것없습니다. 앗사리온은 로마의 화폐 단위로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데나리온의 16분의 1 정도밖에 되는 적은 푼돈입니다.

 

참새는 아주 작고 흔해서 손쉽게 구할 있어 가난한 유대인들의 식량이 되기도 했고, 그런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고독과 슬픔이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참새는 매매되는 생명체 중에서 가장 값싼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보잘것없는 참새조차도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어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사냥꾼의 돌팔매에 맞지 않아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만물은 예수님의 길을 따라 누군가를 위해 대속하도록 지어졌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흘려 돌아가심으로 우리가 것처럼,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피를 흘림으로 우리가 삽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살과 피를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의 원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다른 식물과 동물을 먹고, 자녀는 부모의 인생을 먹으며,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생을 먹어 행복해집니다.

 

예수님이 우주적 희생제물이듯이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오늘을 살아가며, 동시에 우리 또한 희생하여 누군가를 살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새가 떨어진다면, 하나님의 이런 질서 안에서 떨어지는 것이지, 무지막지한 사냥꾼의 힘에 의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주는 말씀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쳤다면 그것은 하나의 십자가의 길이 열리는 것이요, 길을 어린 양처럼 묵묵히 걸어감으로써 죽어가는 누군가를 살리는 길이 됩니다.

 

건강하던 사람이 암에 걸리고 교통사고를 당하며 국가적 재난을 당하여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가 하는 어려운 질문에 대해 들은 가장 아름다운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누군가 걸릴 암을 내가 대신 걸리는 것이며, 누군가 당할 사고를 내가 대신 당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죽을 수밖에 없는 국가적 재난 사태에 죽음을 당했다면,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죽는 대속의 죽음을 죽은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위해 대속하도록 지음받았습니다.”

 

작은 예수라는 말은 세상에 난무하지만, 정말 작은 예수가 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그것은 대속의 삶을 사는 것임을 말을 듣고야 깨달았습니다.

 

앞에 우수수 참새들이 떨어져 있다면, 죽은 모습을 보며 갈기갈기 찢긴 예수님의 몸을 생각할 알아야겠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할수만 있다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지만 결국 사냥꾼의 돌팔매에 맞아 떨어지듯 생명이 떨어짐을 받아들이셨다면, 우리도 삶을 따라야 것입니다.

 

말씀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떨어짐을 허락하실 때가 아니면 보호받고 있다는 또한 동시에 보장되는 말씀입니다.

 

떨어질 때가 언제인지 우리는 없느나 하나님이 허락하시기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는 보호받고 있다는 확실한 보장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 세신 되었다고 두려워말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머리카락은 하루에 50개씩 빠지지만 우리 자신은 아무도 수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떨어지는 머리카락 올까지도 세시고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을 지키지 않으실 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보호받는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무언가 큰일이 닥쳤다면, 순간은 떨어질 때이며, 십자가 앞의 어린 양처럼 묵묵히 잔을 받아야 하는 것임을 기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매우 수동적인 삶인 같지만 사실은 우리 삶을 무한긍정으로 이끌어 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 삶의 히든 키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온전히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학자 Bengel실로 영육의 생사여탈권을 지니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 외의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 외의 모든 것을 두려워한다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죽기밖에 하겠는가외에는 따로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떨어짐을 허락하시는 순간까지는 우리의 머리털 하나도 세시고 계시기에 보호하실 것을 믿으며, 떨어짐의 순간 또한 예수님처럼 묵묵히 받아들일 주님의 공동상속자로서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함께 누릴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삶의 어려움 속에서 순간순간 떨어짐의 고통을 묵묵히 감당하는 동안 우리 손에 주님의 못자국이, 우리 옆구리에 주님의 창자국이 조금씩 생겨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이 임합니다.

 

우리 삶과 우리 모습이 예수님을 닮아갈 있도록 오늘도 인내하기를 바랍니다.

 

인내가 우리 힘겨운 삶에 단비를 내려 예수님처럼 타인을 향해 따뜻한 웃음을 웃어주는 꽃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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