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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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by 브린니 2020. 6. 21.

*평신도 성경 묵상은 평신도에 의한 평신도를 위한 묵상입니다. 화석화된 동어 반복의 신학적 용어들은 때때로 우리 삶의 부조리한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제적인 깨달음과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나눔을 하기 원합니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5장 5절~6절)

 

예수님은 참 외식을 싫어하시나 봅니다. 사람간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우월감과 허영, 허세, 과시 등은 하나님 나라와 정 반대에 있나 봅니다.

 

이런 감정들은 죄의 근원이며, 선악과 사건 이후에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잘못된 감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학벌, 재산, 외모 등으로 자신감을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니 참으로 옳지 않은 바탕 위에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특히 이 말씀에서 ‘기도’라는 소중한 일이 이러한 허영과 허세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너무 싫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외식하는 자’는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 악하면서도 선을 가장하는 유형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남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일을 반복합니다. 남모르게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아닌 척 경건하게 기도회에 참석하고 있다면 바로 이 유형에 속할 것입니다.

 

둘째, 자기만족에 취해서 자기도 모르게 자기 자신을 속이며, 남들도 속이는 유형입니다. 이들은 아주 경건한 삶을 유지하면서 살기에 스스로 만족스럽게 생각하지만, 사실 그 마음속에는 세상적인 욕망과 허영이 있기에 삶 속에서 그 본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곧 들키고 맙니다. 예수님이 책망하시던 바리새인들이 이 유형에 속할 것입니다.

 

셋째, 허세와 허영으로 살아가면서도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매우 거룩하고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유형입니다. 이들은 이미 신앙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어서 가장 완벽한 위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매우 강한 의지를 담은 미래형으로 이 말을 들은 이후에는 절대로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외식하는 이들이 기도하기 좋아하는 장소는 ‘회당과 큰 거리 어귀’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회당에 올라가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루에 세 번씩 꼬박꼬박 회당에 올라와 기도하는 사람에 대해서 사람들은 참으로 신앙적 열정이 뛰어나다고 칭찬했을 것입니다.

 

만약 외출 중에 이 기도 시간이 되면 길가에 서서라도 기도했습니다. 물론 외출 중에라도 기도하려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서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점차 이 모습이 뛰어난 신앙적 열정으로 인식되어 기도 시간에 일부러 외출하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기도의 자세들이 나옵니다. 엎드려서 하는 기도, 무릎을 꿇고 하는 기도, 앉아서 하는 기도, 서서 하는 기도 등이 있습니다. 어떠한 자세로도 기도할 수 있지만, 특히 사람에게 보이려고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서서 하는 기도를 예수님은 금하신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네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골방은 바리새인들이 기도의 장소로 택한 ‘회당과 큰 거리 어귀’와는 명백히 대조되는 장소입니다.

 

‘골방’의 원어인 ‘타메이온’은 ‘자르다’는 뜻의 ‘템노’와 ‘청지기’라는 뜻의 ‘타미아스’의 합성어로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하여 오직 하나님과만 내밀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저장실(store room), 내실(inner room), 침실(bed room)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26장 20절에는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심판날에 대한 무서운 예언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선 사람처럼 모든 것이 다 드러나는 완벽한 순전함으로 진실하게 기도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언제나 모든 것을 환히 아시는 심판자 하나님 앞에 선 것처럼 위선이 통하지 않는 그런 진실한 기도를 원하셨습니다.

 

자신의 방문을 닫는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대화를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도록 제3자의 개입을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벌거숭이가 되어 그 어떤 위선의 가림막도 제거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인간관계 속의 칭찬, 과시, 허영 등의 어떠한 감정도 개입되지 않는 순수한 진실성을 보이는 것입니다. 거기에 개입되는 인간적 감정들은 하나의 우상인지도 모릅니다.

 

영적 자기만족과 신앙적 경건에 의한 높은 자존감은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우상이며, 선악과를 따먹던 그 때의 높아지려는 욕심과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우상을 덕지덕지 몸에 걸치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두 마음을 품은 것이며 하나님 한분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순결하지 못한 자세입니다.

 

교회에서 묵상 모임을 인도하며 지도자로 활동하시는 한 권사님이 한 말이 기억납니다. “집에서 침대 위에 올라앉아서 기도가 돼?”

 

물론 그분은 새벽기도부터 모든 공예배와 기도회에 다 참석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자기 말처럼 집에서, 침대 위에서는 기도가 안 되는 분이었을까요?

 

물론 게으른 신앙생활을 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어느새 우리에게는 개인 신앙보다 공적 신앙이 더 중요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함이 남습니다.

 

교회 생활 속에서, 나, 너, 우리가 함께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말씀은 몹시 벅차고 아름답지만, 그 관계 속에서 칭찬과 과시와 허영이라는 찌꺼기가 생겨 감히 하나님과의 내밀한 사랑의 교제 시간인 기도에까지 침범한다는 것은 심히 우려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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