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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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행복 1

by 브린니 2025. 5. 18.

행복 1

 

 

그녀는 대기실에서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50대 여성이 서 있었다. 인생은 지금까지 살던 곳과는 다른 장소로 그녀를 옮겨 놓았다. 지난 3년 동안 그녀는 환상 세계를 횡단하는 것만 같았다. 머릿속에서만 생각해왔던 것들이 현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남편은 어느 시기부터 그녀를 향해 자주 말해왔다. 착한 아내는 보물을 가득 싣고 귀항하는 배와 같다고. 착한 게 뭐야, 하고 물으면 그건 사람을 사랑하는 거야, 하고 대답했다. 착하게 살면 뭐가 좋은데, 하고 물으면 그게 행복이야, 하고 대꾸했다. 그동안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어렵게 살아왔던가. 그런데 그게 행복이라니.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상상을 얼마나 많이 해왔던가. 그저 환상에 불과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이제 손에 잡히려고 하는 때가 된 것일까.

 

그녀는 오늘 사람들 앞에서 행복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에 대해, 착하게 사는 것에 대해. 그러나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착하게 살면서 행복하게 되려면 먼저 이 사회가 그 토대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행복은 단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 공동의 것이다. 혼자만 행복한 것은 행복이 아니다. 행복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야 진짜 행복이다. 그러므로 혼자서만 행복해지려고 애쓰는 것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그 욕망은 안타깝게도 늘 실패한다. 행복은 사회적인 것이다. 다 같이 행복한 세상이 아니라면 행복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행복을 다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 

 

3년 전까지는 상상조차 못했던, 아니 생각을 하기 시작한 어느 시점부터 늘 꿈꾸어왔던 이야기들을 이제 처음으로 입을 열어 세상에 말하려는 것이다. 거울 속에는 낯선 여자가 서 있지만 그 여자는 지난 50여 년간 함께 살아온 친밀한, 자신의 반대편 모습이었다.

 

스텝 한 분이 와서 방송 10분 전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대기실을 나와 스튜디오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여 있다는 것이 새삼 고마웠다. 사람이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준다는 것처럼 귀한 일이 또 있을까. 사람이 괴로워하는 일 중에 가장 견디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아무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때 가장 외롭다. 사람들이 어울려 살려면 서로 들어 주어야 한다. 그녀는 지금부터 자신이 하는 이야기가 듣는 사람들에게 행복에 대한 희망으로 다가가기를 빌었다. 행복이 그저 환상이 아닌, 손에 잡히는 행복으로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스텝의 안내를 받아 그녀가 자리에 앉았다. 앵커들이 웃으며 인사를 했다.

질문지는 잘 보셨죠?” 여성 앵커가 부드럽게 물었다.

부담 없이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남성 앵커가 덧붙였다.

. 고맙습니다.” 그녀가 대답했다.

PD가 사인을 주자 방송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오늘> 이정민, 김효은입니다.” 두 앵커가 인사를 했다.

“<인터뷰 오늘>에서는 요즘 정치권에서 가장 하신 분 행복당 한성실 대표를 모셨습니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 안녕하세요. 한성실입니다.”

요즘 정말 바쁘실 텐데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근황을 잠시 여쭤봐도 될까요?” 이정민이 물었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아서 유세하느라 정책 알리느라 정신이 없긴 합니다.”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행복당은 이제 창당한 지 2년 반 정도 되었는데 어떻게 창당까지 하게 되는 건지 궁금한데요.” 이정민이 물었다.

당원들 대부분이 가정주부라고 들었는데요.” 김효은이 덧붙였다.

, 이미 어느 정도는 알려졌는데요. 202412. 3 내란이 나고 대통령이 탄핵될 때 여성들이 광장으로 많이 모였잖아요. 거기서 서로 연락처도 교환하고 SNS 맞팔도 하고 그랬어요. 탄핵이 결정되고 나서도 SNS를 통해 서로 의견들을 나누곤 했었죠. 그러다 좀 더 조직적으로 우리 목소리를 사회에 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역별로 동아리를 만들고, 전국모임도 열게 되었어요. 이렇게 조직이 생기게 된 거죠. 근데 어느 날 어느 분이 아예 시민단체나 정당으로 발전하면 어떠냐는 이야기를 했어요. 많은 대화가 오고 가다가 결국 정당을 만들어보자는 데까지 나아갔어요. 그땐 정말 이렇게 될 줄 몰랐죠. 지역 동아리들을 지역당으로 개편하고, 위원장들을 세우고, 중앙당 대표들을 위촉했어요. 처음엔 정당 활동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 위주로 조직을 채웠는데 조직이 완성되자 2년째부터는 정당의 방향을 정하고 거기에 맞는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어요." 

대표 경선이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 처음엔 정치나 공직, 시민단체 경험자들을 중심으로 조직이 만들어졌지만 점점 더 정책 중심으로 바뀌었어요. 우리가 새로운 정당, 특히 어머니들로 모이다 보니 기존 정치 문법과는 전혀 다른 생각들이 나오게 되었고, 그 생각들을 모으고, 정리하고, 종합하고, 그런 생각들을 실천할 의지와 용기,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필요했어요.”

그러니까 참신한 정책 아이디어를 내거나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았다는 거죠?”

. 단순히 새롭고 참신한 그런 정책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게 되었다는 게 맞겠습니다.” 

“처음엔 대표님은 유력 인사가 아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 . 저는 그때까지는 그냥어머니였죠.”

하하하. , 행복당은 대부분 가정주부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까?”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분들이 어머니인 건 맞습니다.”

그런데 경선 때 갑자기 대표님이 부상한 이유는 뭐였습니까?” 김효은이 물었다.

제가 당 이름을 지었거든요.”

, 그건 잘 알려진 사건이 아닌데요.”

제가 행복당이라고 건의하니까 많은 분들이 동의를 하셨어요. 그런데 어느 분이 행복당은 정당 이름으로 어울리지 않다면서 국민행복당으로 하자고 하셨죠. 그러니까 또 많은 분들이 동의를 하셨고, 그래서 온라인 투표를 진행했는데 제가 당명이 행복당이어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했습니다.”

그 이유가 뭐였습니까?”

"우선 국민이란 말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령처럼 들린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 국민 정서에 어긋난다,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 하지만 정작 우리 정치 현장에 국민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권력자들이 자기네들 편한대로 국민을 여기 저기 써먹었을 뿐이죠. 그래서 저는 국민을 빼고, 그냥 행복당이라고 하자고 말씀드렸죠." 

"사실 좀 그렇죠. 정치인들의 입에서 국민이란 말은 너무 쉽게 나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으니까요." 이정민이 대꾸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책을 이야기하실 차례였겠네요." 김효은이 물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 지수는 매우 낮은 편입니다. 많은 분들이 행복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행복이 사회적인 것에서 비롯된다고 잘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행복이라면 개인의 행복으로 여기니까요. 사실 남이 행복한들 자신과 상관이 없다고 느껴지니까요. 심지어 남의 행복은 나의 불행이라고까지 여기니까요. 사촌이 땅사면 배아픈게 우리 모습입니다. 그러나 행복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들 불행하고 몇몇 사람들만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어요. 그럼 이렇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왜 다들 불행할까? 이유가 뭘까? 만약 내가 혼자 행복해지면 그때부터 몇몇 행복한 자들의 집합에 속하게 되고, 그럼 나는 진짜 행복할까? 불과 얼마 전까지 나는 행복하지 않은 자들의 집합에 속했는데 이제 예외 집합에 속했네? 그럼 남들에게 부러움을 사는 동시에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게 되지 않을까? 이게 진정으로 내가 바라던 행복일까? 개인의 행복이란 결국 다수의 불행한 자들의 집합에서 예외적인 행복한 자들의 집합으로 옮겨가는 것에 불과한  꼴이 됩니다. 그게 행복이란 뜻에 합당할까요?"

"정말 특이한 말씀이네요. 행복이란 단순한 집합이동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씀이시군요." 김효은이 말했다. 

"저는 행복이란 행복하다, 행복하지 못하다, 라는 식의 생각을 할 수 없이 삶이 평온하게 흘러갈 때를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욕망이 다 사라진 열반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 이정민이 중얼거렸다. 

"네, 그것도 아주 좋은 상태입니다. 저는 그저 공동체 구성원 모두 행복하면 위에서 말씀 드린 집합이 없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

"네. 공동체에서 예외가 되는 건 사실 좋지 못하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모두 행복해질 수 있죠?"  김효은이 다시 물었다.  

"사회가 행복할 수 있는 토대를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느끼는 불만은 누군가는 행복의 조건을 갖고 태어나거나 물려받거나 이미 소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조건 중 하나도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한데 말입니다. 그 몇몇은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미 갖고 있고, 나는 없다, 이것이 머릿속에 박힌 생각입니다." 

"금수저나 흙수저처럼 말이죠?"

"그렇습니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 출발선이 다른 경기장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운동장부터 평평하게 만들고, 출발설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이죠." 

"그래서 그 방법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정민이 약간 짜증섞인 말투로 물었다. 

"선거가 끝나고 우리 당이 국회에 입성하면 혼인금지법을 발의하려고 합니다."  

"네? 혼인금지법이요?" 

앵커 두 사람 모두 소리를 높였다. 

“혼인금지라면 사람들에게 결혼을 금지한다는 말인가요?” 

"결혼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 혼인으로 발생하는 법적 효력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건 그렇고, 어쩌다 그런 생각을 하신 거죠?" 

우리나라는 부동산과 교육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습니다. 부동산과 교육을 독점하는 세력들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많은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릭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불행당한 사람들은 자신들고 그들처럼 부자가 되고 교육을 많이 받아서 권력 상층부로 가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했다기 보다 하다 당하다보니 그걸 체화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짜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죠. 부자가 되면 행복해진다, 권력을 잡으로면 더 행복해진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럼 결혼금지법이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정민이 물었다. 

"아, 부부도 법적으로 남남이고, 자녀도 남이라면 재산증여나 상속이 불가능하겟는데요?" 김효은이 말했다. 

"네, 최소한 혼인으로 부부의 재산이 통합되거나 자녀에게 대를 이어 부를 물려줄 수 없게 됩니다."

"상속은 친족한테 하는 것이니까요. 그럼 가족이나 친족, 우리나라 가계 체계가 다 무너지는 것 아닙니까?" 이정민이 말했다.  

"결혼도 해도 되고, 가계도 유지되고 족보를 쓰는 것도 상관없어요. 단지 법적 효력이 없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대표님 말씀은 윤리로서 결혼이나 가계나 집안 등은 언제나 가능해왔다, 다만 경제적, 법적 의무나 권리에서는 벗어난다는 뜻이죠?" 김효은이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부모의 재산도 상속이 안 되고, 채무도 상속 불가란 말씀이죠?"

"네." 

"와우, 그럼 진짜 개인의 의무와 권리만 존중받는 사회가 되는 것인가요?"

"그것도 한 가지 목표라면 목표죠. 결과라면 결과일테고요."

"금수저, 흙수저란 말도 이제 없어지겠는데요." 

"그래야 기울어진 운동장, 불공정한 출발선 등이 사라지겠죠." 

"이거 정말 재미있겠는데요." 

김효은이 약간 들떠서 말하자 이정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말씀들을 주장하시니까, 대표님이 경선에서 당선되신 거로군요."

"네, 그리고 다른 것들도 있는데" 

 

 

그녀가 대답을 하려는 순간 PD가 방송 스톱 사인을 냈다. 인터뷰 시간을 초과한 것이었다. <인터뷰 오늘>9시 뉴스 말미에 10여 분 가량 셀럽을 초대해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 아쉽게도 여기서 인터뷰를 마쳐야겠습니다.” 이정민이 말했다. 

대표님, 마지막으로 유권자들에게 한 말씀 하시죠.” 김효은이 눈치주는  PD를 무시하고 그녀에게 시간을 내줬다.

 

지난 내란 사태를 지켜보면서 우리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기득권층으로 군림해온 분들의 민낯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학벌, 재산, 지역 등으로 자신들만의 권력을 만들고, 유지하면서 대다수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후안무치한 사건들을 목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행복당은 밑으로부터 일어난, 그동안은 집에서 아무런 권리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어머니들과 여성들이 모여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국민이 주권을 올바로 행사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인 특이한 정당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특이성을 올바른 정책으로 반영해 이를 현실화하고 사회를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 국민 개개인에게 그 행복을 서로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잘 지켜봐주시고, 많은 격려와 채찍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인터뷰에 응해주신 행복당 한성실 대표님 감사합니다.”

못다 들려주신 이야기는 우리 방송국 다른 시간에 다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생방송이 끝나자 PD와 스텝들이 달려와 그녀에게 곧 다른 방송 시간을 잡을 테니 방송국을 떠나지 말고 잠시 기다려주시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유튜브나 다른 매체에서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다음에다시 이야기하자고 말하고 방송국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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