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시] 생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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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창작 시] 생활시

by 브린니 2022. 8. 14.

생활시

 

 

코로나 19 후유증에

가슴이 뛰고

역류성 후두염까지,

죽과 꿀로 버티는

아내를 위해 유황한방오리를 먹으러 나섰다

 

한약도 한 첩 먹어보자고 며칠 뒤 예약해뒀는데

처이모로부터 전화가 와서

며칠 전 장모가 자리에서 일어나다 쓰러져

얼굴에 멍이 들었다고 한다

아내는 얼른 흑염소를 달여 드시게 하라며 한약 지르려던 값을 이모께 보냈다

 

장모는 딸에게도 안 좋은 일에는 입을 닫았다

좋은 소식 나누면서 살기도 어려운데

나쁜 일로 맘 상하면 못쓴다는 생각이셨다

 

서른 두 살에 장모는 자궁 외 임신이 되어 자궁을 통째로 들어내야 했다

그 뒤로 다리에 힘이 없어 늘 손 짚고 일어섰는데

이제 나이 들어 팔에도 힘이 떨어져 얼굴을 찧은 것이다

얼굴에 멍빛이 바뀔 때마다 혼자 울었다고 한다

 

엄마한테 약값을 보내고 나니까 속이 다 나은 것 같아

1년에 한 번씩은 흑염소를 드시게 해야겠어

 

고슬고슬한 찰밥을 품은 유황오리는 기름이 쫙 빠져 담백하고 쫄깃하다

정신없이 먹다가 문득

닭을 스무 마리쯤 고아 먹으면 살 것 같다고 말한

서른 살에 죽은 김유정이 생각났다

잘 먹고 잘 살자는 말에 괜히 숙연해지고

밖에선 소나기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식사가 끝난 뒤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일상사를 나누며 웃고 떠들었다

식당 벽이 거울이라 손님들이 두 배로 많아 보이는데

오리 껍질을 씹고 있는 내 얼굴과 눈이 마주쳐

민망하고 부끄럽다

 

인생 참 잘못 살아왔구나

인성 참 더러운 놈이었구나

자괴감에 머쓱해지는데

아내는 그대로 내가 있어 참 다행이란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혼자 살면 식당에 와서도 못 먹고

포장해서 집에 가져가 몇 날 몇 끼 혼자 먹다가 지겨워서

냉장고에 두고 자꾸 쌓이기만 할 것이라며

밥동무 하는 나를 기특하게 바라본다

 

개가 뼈다귀를 핥듯 배터지게 먹고나서

개 같은 내 인생, 개처럼 사랑받고 사니까 참 다행이다, 생각했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데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디저트 먹을 상상에 부풀었다가

집 가까운 찻집으로 방향을 틀었다

수해로 사람 목숨이 위태로운데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고 현명한 아내가 말하고

 

아무리 그래도 보약 한 첩은 먹여야지, 나는 딴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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