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 진짜 교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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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장편소설 연재] 진짜 교회 (28)

by 브린니 2020. 9. 13.

진짜 교회 28

 

 

김영수 목사 브라질로 떠나다

 

 

김영수 목사는 느헤미야 형제에게 안식년 1년 동안 교회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형제는 자신은 목회자가 아니며 그렇게 큰 교회를 섬길 만한 능력도, 자격도 없다고 여러 번 고사했다. 그러나 김영수 목사는 느헤미야 형제를 자주 방문해서 그와 자신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며,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느헤미야 형제가 꼭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김영수 목사는 안식년을 맞아 브라질로 떠나기 전 마지막 예배에서 설교했다.

 

“저는 오늘 마지막으로 이 강단에서 설교합니다. 저는 내일 1년 동안 안식년을 보내기 위해 브라질로 출국합니다. 브라질과 남미 지역에 우리 교회가 개척한 교회들을 돌아보고 새로운 선교지를 탐방할 것입니다. 1년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이미 여러 번 말씀드린 대로 저는 1년 뒤에 교회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안식년 기간 동안 느헤미야 형제가 성도 여러분들과 교회를 섬길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흩어져 작은 지역교회들을 섬길 것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교회는 더 이상 성전을 확장하거나 신축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흩어져 지역교회를 섬기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교회가 세워질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이미 제사장입니다. 누가 설교를 하고, 누가 재정을 맡고, 누가 어린이들을 가르치는가, 누가 이러저러한 봉사를 맡아서 하는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교회의 성도이며 또한 제사장입니다. 목회전문가만 사역하고, 다른 성도들은 섬기고 돕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사역하며 모두 돕고, 모두 섬깁니다. 서로가 서로의 종이 되어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씨를 뿌리면 누군가가 기르고, 누군가는 열매를 딸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지만 서둘러 그 열매를 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열매는 우리의 후손이 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을 약속하셨고, 그의 후손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했기에 영생을 얻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약속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터를 닦으면 다른 사람들이 세웁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성취하고 기뻐합니다. 우리는 이 기쁨에 참여할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생이 아닌 천국에서 그 기쁨에 참여할지라도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끝나기 전에 하나님의 상급을 모두 받으려고 조급하게 굴지 맙시다. 천국에서 우리의 상이 하나도 없으면 얼마나 가련하겠습니까. 천국에서 면류관을 받기 위하여 이 땅에서 조금 덜 영광스럽고, 조금 덜 명예롭더라도 참고 인내합시다. 주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저는 한 사람의 성도로 그리스도 앞에 서려고 합니다. 저는 대형교회 담임목사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해외에 여러 교회를 세웠다는 것, 큰 성전 셋을 지었다는 것, 신학박사 학위, 총회장, 대학이사 등등 단순히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 말고 다른 모든 것들을 버립니다. 저는 주님과 만날 때 그저 한 사람 김영수로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신앙과 삶과 행위에 대해 심판받을 것입니다.

 

저는 성공한 목회자로서 주님을 만나지 않을 것이며 주님도 나를 그렇게 보시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저의 목회는 실패였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이 땅의 다른 목회자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때부터인가 그리스도의 교회를 내 교회로, 그리스도의 자리를 내 자리로 생각하며 목회의 성공을 즐겼습니다. 그때 이미 저는 더 이상 주의 종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책망하신 사데 교회와 같습니다. 사데 교회는 살아 있다는 명성을 얻은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 역시 살아 있다고 자부하는 교회 아닙니까? 우리는 자주 모여서 예배하고, 성경공부하고, 중보기도하며, 제자훈련을 합니다. 우리는 교회 밖으로 나가 구제하고, 봉사하고, 이웃을 섬깁니다. 우리 교회만큼 구제와 봉사로 사회에 기여하는 교회는 별로 없을 정도입니다. 또한 우리 교회는 열방에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며, 교회를 세우고, 현지인들을 위해 학교와 병원을 짓고 섬기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우리 교회는 살아 있는 교회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데 교회는 그리스도의 책망을 받았을까요? 주님이 보실 때 우리는 어떠할까요?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예배와 함께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고 있기에 스스로 신앙이 좋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실상을 살펴봅시다.

 

우리는 사실 옛사람의 습성대로 세상의 풍속을 따르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성공의 척도라고 생각하며 돈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경쟁에서 이겨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 좋은 결혼을 하고, 또 그들의 자녀들이 축복 가운데 자라는 것을 최우선적인 행복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최우선적인 자리를 차지한 적이 얼마나 될까요? 하나님은 그저 나를 도우시고 축복하시는 헬퍼에 불과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의 유익을 위해 언제든 불러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 아닙니까? 우리가 경건해 보이는 종교행위를 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주님이 2순위, 3순위로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진짜 주인이십니다. 주님은 언제나 0순위이며 내 삶의 주인입니다. 주님이 주인이 아닌 삶은 살았지만 죽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명성 있는 OO교회이지만 어쩌면 명성뿐인 죽은 교회일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은밀하게 숨겨놓은 죄가 있거나 상습적이고 반복적으로 빠지는 죄가 있다면 우리는 결코 산 것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습니다. 우리는 너무 부유하고, 배가 불렀습니다. 영적으로 안일할 뿐만 아니라 육신적으로도 너무 비만입니다. 그리스도께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았으나 그것들을 이웃과 나누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우리 속에서 썩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흘러 보내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이지 많이 헌금하고, 많이 헌신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낸 헌금 액수를 보시지 않고, 우리 손에 남겨둔 돈을 보십니다. 십일조를 냈으니 다 됐다고 생각하시나요?

 

부자 청년도 계명을 다 지켰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손에는 주께 드리지 못한 얼마나 많은 재물이 있습니까.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헌금하라고 설교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이 부유하게 살고 있는 것이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시거든 그것을 이웃과 나누십시오. 교회로 가져오지 말고 여러분이 서 있는 곳에서 이웃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면서 물질과 함께 은혜와 사랑을 나누십시오.

 

어느 부자가 자신을 위해 곳간을 여러 채 짓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그의 영혼을 오늘밤에 찾으신다면 그 재물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남아도는 재물이 있다면 그것 때문에 행복하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혹시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아닌 재물을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십일조만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이 주님이시고, 내 물질과 모든 소유가 주님의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 교회에 세리와 창기들이 들끓어야 합니다. 세상의 많은 죄인들이 마음 놓고 들어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교회 문이 활짝 열려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전형적인 중산층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거지나 노숙자가 들어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화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거지나 노파나 어린이로 나타났을 때 성도들이 알아보지 못한다는 얘기 말입니다.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성장하셨다는 사실 때문에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거지와 노숙자가 우리 교회에 들어오지 못한다면 거지와 노숙자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또한 우리 교회에 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회당에는 세리와 창기의 친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자, 소외된 자의 친구이신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교회에 모셔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끼리 여기 초막을 짓고, 우리끼리 변화산 체험을 나누고, 우리끼리 먹고 마시며 즐긴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떠나 죄 많은 곳, 죄 많은 사람들에게로 가실 것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좇아 떠납시다. 그리스도가 계신 곳으로 갑시다.

 

우리나라의 십대, 이십대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5%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십대 이하는 그리스도의 이름조차 듣지 못한 채 자라고 있습니다. 흩어져 우리의 자녀들에게로 갑시다. 죽어가는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로 갑시다. 더 이상 여기가 좋사오니, 하면서 머물러 있지 맙시다.

 

은혜로 배가 불러서 뱃속부터 썩는 냄새가 나는 상태로 머물러 있지 맙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와 함께 부활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주님이 살아 계십니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제 내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그 무한한 사랑을 이웃에게 전해야 합니다. 예수 믿으라고만 말하지 말고, 이웃에게 진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 교회에만 머물지 말고, 여러 교회로 흩어져 그리스도가 사랑하시는 죄인들 곁으로 가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너무 은혜롭고 좋아서 떠나기 싫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지금 우리는 안락한 교회 시설과 달콤한 설교를 즐기는 것뿐인지도 모릅니다. 목회자와 성도가 한통속이 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썩게 만드는 짓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장엄하게 죽어가는 타이타닉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어서 이 거대한 배를 조각배로 나누어 타고 나도 살고, 죽어가는 다른 사람들도 구원하시겠습니까. 지금 그리스도께서 원하는 진짜 교회는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봅시다. 더 이상 성도 여러분은 물에 빠져 침몰하는 타이타닉과 같은 교회를 지탱하기 위한 소모품과 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향해 당신이 우리 교회의 기둥이라고 속삭이는 거짓말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침몰하는 배의 기둥인 된 들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교회 운영과 행사에 이바지하고 헌신 봉사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이제 성도 각자가 한 사람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속에 있는 한 우리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로 사십시오.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어 줄 때 그 사람과 나는 또 하나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는 이런 교회를 세운다는 것이 요원해보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면서 진짜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야 할지 고민한다면 지혜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길을 내실 것입니다. 우리는 길 되시는 그리스도를 따라 가기만 하면 됩니다.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맡기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완성에 동참합시다.”

 

김영수 목사는 공항에서 많은 성도들의 환송 인사를 받았다. 개척했던 교회에서 떠나던 날처럼 많은 성도들이 기쁨의 눈물로 그를 배웅했다. 비행기에 오르면서 그는 느헤미야 형제의 손을 꼭 잡았다. 자신에게도 함께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형제가 처음으로 생겨서 정말 감사했다. 평생 이런 친구가 자신에게는 없을 것 같았다. 은퇴하고 인생을 조용히 정리해야 할 시기에 이런 친구를 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는 큰아들 뻘이었지만 결코 나이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삼촌이나 큰 형님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도 김영수 목사를 그렇게 생각하고 따랐다. 서로가 서로에게 진심으로 의지할 수 있어서 좋았다.

 

김영수 목사는 더 굳게 형제의 손을 잡았다. 브라질에서 돌아오기 전에 형제는 많은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김영수 목사가 돌아오면 함께 더 많은 일들을 해나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 김영수 목사는 보다 멀리 떨어져서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우리나라 교회를 살펴볼 생각이었다. 김영수 목사는 유학길에 오르던 사십 년 전과 같은 기분에 설렜다. 집회를 하려고 여러 번 해외로 나갔었지만 이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창조 세계를 마주하기 위해 떠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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