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 진짜 교회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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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장편소설 연재] 진짜 교회 (27)

by 브린니 2020. 9. 11.

진짜 교회 27

 

 

모이는 교회에서 흩어지는 교회로!  작고 낮은 예배를 위하여!  : 새로운 교회를 향한 첫걸음

 

 

김이레 목사는 주일예배 후 당회를 소집했다.

 

“아시다시피 김영수 목사님께서는 안식년에서 돌아오시면 OO교회를 떠나 작은 교회를 섬길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부터 준비해서 아버지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교회를 사직할까 합니다.”

 

“네?”

장로들이 모두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장로들은 대부분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가 갑자기 떠난다는 것은 그들에게도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그를 존경했으며 그도 장로들을 동역자로서 잘 섬겼다.

 

“곧 갈 곳이 정해지면 떠날 생각입니다.”

 

“목사님, 지금 우리 교회는 새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로 교회가 새롭게 도약하는 시점인데 목사님이 떠나시다니요.”

신장로가 말했다.

 

“솔직히 새 성전을 지어야 할까, 고민스럽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성전 건축을 원하실까요? 지금 성전도 충분히 크지 않습니까?.”

 

“목사님, 왜 갑자기 다른 말씀을 하십니까? 교회 건축은 목사님께서 주창하신 것 아닙니까? 그리고 대예배 드릴 때면 정말 앉을 자리가 없습니다. 잘 아시면서 그러십니까?”

송 장로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도 성전은 작지 않습니다.”

 

“교인들이 자꾸 불어나서 그렇지 않습니까.”

신 장로가 말했다.

 

“굳이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예배드릴 필요가 있나요?”

 

당회원들 모두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서로들 쳐다보았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들고 흩어져야 합니다. 그동안 저와 함께 많이 배웠으니 작은 교회를 섬기기 위해 선교사로 파송해도 되지 않을까요?”

 

“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박 장로가 물었다.

 

“교회에는 한 자리에 모여 예배드릴 수 있는 성도들만 남고 다른 분들은 선교사로 여러 교회로 파송한다는 말입니다. 열악한 지역으로 선교사가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평신도들을 선교사로 파송한단 말입니까?”

박 장로가 큰소리로 물었다. 질문이라기보다 질책 같이 들렸다.

 

“왜 안 됩니까? 꼭 신학교를 나와야 선교사 자격이 생기는 것입니까? 평신도도 얼마든지 선교지로 나가 사역할 수 있습니다. 복음 전파는 목사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누구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목사님, 이론이야 그렇지요. 그런데 어디 현실이 그렇습니까?”

신 장로가 대꾸했다.

 

“장로님, 모태신앙이시죠?”

“네.”

 

“그럼 60년 동안 예수를 믿었고, 교회에서 잘 배웠으니 지금 당장이라도 선교 나가셔도 되지 않겠어요?”

“아이고, 이 나이에 무슨…… 그리고 저는 영어라면 정말 까맣습니다.”

 

“꼭 해외로 나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사를 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집 근처 작은 교회로 파송되어 그 교회를 섬기시면 됩니다.”

“아니, 저더러 교회를 나가라는 말씀입니까? 아니, 제가 수십 년간 교회에 얼마나 헌신했는데…… 저더러 교회를 떠나라는 말씀이신가요?”

 

“장로님, 무슨 말씀을요. 교회를 떠나시라는 게 아니라 선교의 사명을 띠고 지역으로 파송되어 작은 교회를 섬기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럼 작은 교회를 재정적으로 섬기는 방안을 마련하면 되지 않습니까.”

임 장로가 나섰다.

 

“네, 그것도 좋지요. 지금도 이미 10개 미자립 교회를 섬기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돈으로 하는 선교는 이제 그만 두어야 합니다. 직접 나가서 섬겨야 합니다. 해외 선교는 직장도 내려놓고 내 삶의 터전도 바꾸어야 하니까 어렵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교회를 섬기는 일을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니, 그런데 왜 우리가 교회를 나가야 한단 말입니까? 누가 자신이 평생 다니던 교회를 두고 다른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박 장로가 말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교회의 성도입니다. 모든 교회는 하나입니다. 우리 교회, 남의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굳이 자동차를 몰고 먼 데까지 와서 예배를 드리느니 집 가까운 교회를 섬기면서 이웃들과 교제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결국 저더러 교회를 나가라는 것이 아닙니까.”

신 장로가 소리를 높였다.

 

“꼭 장로님께 파송을 권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나가고, 누가 남는단 말입니까?”

박 장로가 큰소리로 물었다.

 

“누가 남고 누가 나가는 게 아닙니다. 그동안 큰 교회를 섬겼으니 이제 작은 교회에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도 좋겠다는 말씀입니다. 정 우리 교회 교인으로 남으시겠다면 교적을 그대로 여기 두고 파송된 다음 몇 년간 작은 교회를 섬기다가 돌아오시면 됩니다.”

 

“아니 그렇지만 우리 교회가 좋고, 우리 목사님 말씀이 좋아서 여기 있겠다는 사람을 어떻게 내보냅니까?”

임 장로가 말했다.

 

“내보내는 게 아니라 파송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선교사로 파송한다는 것을 꼭 알아주십시오. 순전히 원하는 성도들에 한해서 시행할 것입니다. 작은 교회를 섬기고 싶은, 선교사로서의 사명감이 불타는 성도가 있다면 파송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제가 저를 파송할 것입니다.”

 

“목사님, 오늘 왜 이러십니까. 뭐, 사례비가 부족하세요? 저희들이 목사님을 잘못 모셨습니까? 도대체 왜 그러세요.”

박 장로가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사실 새 성전 짓는 일을 재검토하고 싶습니다. 더 이상 교회를 크게 짓고 신도 수를 늘리는 것은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미 크게 성장했으니 여기에 머물러 안주하지 말고, 흩어져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지역 사회와 이웃을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장로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수석 장로인 구목평 장로가 입을 열었다.

 

“목사님, 우리 교회는 재정의 15% 가량을 선교비로 쓰고 있으며 이미 개척한 교회도 열 곳이 넘습니다. 선교사도 30명 이상 파송하였습니다. 그 선교사에게 지원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 성도들을 다른 교회로 파송하시겠다니 교회를 책임지는 저희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네, 갑자기 제가 이런 말을 꺼내서 당황스러우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 이 시대에 주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간절히 구해봅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원하신 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교회들은 분열과 다툼뿐입니다. 개교회에도 평화와 안식이 없습니다. 교회가 문제다, 문제다 하면서도 정말 무엇이 문제인지도차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모이는 교회에서 흩어지는 교회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새로운 교회가 필요합니다. 성전을 크게 짓고, 화려한 시설과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교인들을 관리하는 식의 대형교회 시스템은 생명력을 잃었습니다. 작고 낮은 예배를 드릴 수 있고 성도들의 사랑의 교제가 가능한 작은 규모의 모임이 필요합니다. 교회 나오라고 소리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으로 나가서 믿지 않는 이웃들과 어울려야 할 때입니다.”

 

장로들은 회의실을 나가면서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오늘 저녁부터 교회가 시끄러워질 것 같았다. 김이레 목사는 신학을 마치고 첫 부임지로 떠나는 심정이었다. 주먹을 굳게 쥐었다. 예전의 열정을 다시 회복한 느낌이었다.

 

교회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교회에는 사람이 없다. 오직 교회 건물과 제도와 조직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움직이는 시스템과 돈과 노동력뿐이다. 성도들은 건물을 유지 운영하고, 제도와 조직의 성공을 위해 헌금하고 노력 봉사하는 무임금 노동자들일 뿐이다. 요즘 우리 교회의 충성된 일꾼들은 모두 지쳐 있다. 몇 십년간 똑같은 교회의 운영 프로그램에 의해 돌림빵을 당해왔기 때문이다.

 

교회 짓는다고 빚내서 건축헌금하고, 선교부, 교육부, 문화부 등에 소속되어 각종 행사와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 헌신을 다한다. 주차봉사, 식당봉사, 청소봉사 여러 가지 봉사에 지쳐 있다. 주일날은 죽일날이다. 예배와 각종 모임과 헌신, 모두 버겁기 짝이 없다.

 

목사의 설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 말하지만 결국엔 교회에 충성된 일꾼이 되라는 것이다. 그래야 교회가 더 성장하고 발전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체 성도 수가 점점 줄어가고 있는데도 성경 말씀의 진리대로 살기 어려우니까 쉽고 편하게 예수 믿으려는 쭉정이들은 빠져 나갈 수밖에 없다고 자위를 하고 있다.

 

교회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교회는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그리스도를 머리 삼아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왜 사람이 중요한가.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다. 사람의 몸으로 죽고, 사람의 몸으로 부활하고, 구원을 이루셨다. 사람이 아니라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왜 그리스도가 죽으셨는가.

 

그런데 바로 그 사람들이 교회의 건물과 제도와 조직의 부속물이 된 채 죽어가고 있다면 사람을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떠하실까. 사람은 부속품이 되었고, 그 꼭대기에 목사가 앉아서 관리하고 있는 것이 우리 교회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거기에는 생명도 없고, 사랑도 없다. 오직 지배와 복종뿐이다. 성경말씀은 그 건물과 제도와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법칙으로서 성도들을 관리하고 옥죄며 충성을 요구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교회에는 그리스도의 참 평화와 안식이 없다.

 

우리 교회에는 더 이상 부흥이 없을 것이다. 더욱 더 쇠락할 것이며 임박한 심판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방식의 교회가 다 망해 없어져 버리더라도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남을 것이다. 그들이 다시 그리스도의 교회가 될 것이다. 교회가 사람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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