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솔아#동시에#자판기#커피#종이컵#편지#1 [명시 산책] 임솔아 <동시에> 동시에 자판기 불빛을 마시러 갔다. 만지작대던 동전을 넣으면 금세 환해지는 게 좋았다. 종이컵과 악수를 하는 게 좋았다. 갓 태어난 메추라기처럼 따뜻한 종이컵. 테두리에 이빨 자국을 새기는 게 좋았다. 의자 위에 세워두었다. 내가 버린 컵은 편지가 되었다. 비바람 치는 밤에는 빗방울들이 악착같이 나를 부르는 게 좋다. 발음이 어려운 내 이름을 두 번 부르게 하는 게 좋다. 내 이름을 모른 체하느라 벗어놓은 옷을 내가 뒤집어쓰는 게 좋다. 폭우에 몸을 녹이느라 폭우를 맞는 게 좋다. 성당의 첨탑 아래에서는 악마와 천사가 공평하게 부식되는 게 좋다. 종이컵 편지에 빗방울이 모여들 것이다. 빗방울이 모여 구름을 새길 것이다. 연녹색 손바닥이 버짐나무 가득 퍼드덕거릴 것이다. 잘 가라는 손짓이면서 동시에.. 2022. 5. 10.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