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달#거울#이야기#1 [명시 산책]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달> 달 역사에 등장하네. 실제, 상상, 의혹의 일들이 무수히 교차했던 옛날 옛적, 한 권의 책에 우주를 담으려는 터무니없는 계획을 품은 이가. 거칠 것 없는 기세로 고귀하고 난해한 원고를 곧추세웠지. 그리고 마지막 행을 다듬어 낭송했네. 운 좋게도 뜻을 이룰 뻔했지. 그런데 눈을 들자마자 허공에서 빛을 발하는 원을 보고 얼이 빠졌네. 달을 잊었던 거지. 설령 허구일지라도, 이 이야기는 우리네 삶을 언어로 바꾸는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저주를 연상시키네. 본질은 언제나 상실되는 것. 영감을 지배하는 절대적 법칙이지. 달과의 내 오랜 실랑이에 대한 다음 요약도 피할 수 없을. 나는 달을 어디서 처음 봤는지 모르네. 앞서의 그리스인이 말한 하늘에서였는지, 우물과 무화과나무의 정원으로 기우는 오후에서였는지. 유전하는.. 2022. 6. 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