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시집1 [명시 산책] 장정일 <시집> 시집 시로 덮인 한 권의 책 아무런 쓸모없는, 주식 시세나 운동 경기에 대하여, 한 줄의 주말 방송프로도 소개되지 않은 이따위 엉터리의. 또는, 너무 뻣뻣하여 화장지로조차 쓸 수 없는 재생 불능의 종이 뭉치. 무엇보다도, 전혀 달콤하지 않은 그 점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로 덮인 한 권의 책, 이 지상엔 그런 애매모호한 경전이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신을 위해서랄 것도 없는. 하지만 누가 정사에 바쁜 제 무릎 위에 얄팍하게 거만 떠는 무거운 페이지를 올려놓는다는 말인가? 그래, 누가 시집을 펼쳐 들까 이제 막 연애를 배우는 어린 소녀들이, 중동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아니라면 장서를 모으는 수집가의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뒷장을 열어 출판 연도를 살펴볼까? 양미간을 커튼같이 모으며 이것 굉장.. 2020. 7. 2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