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솔아#하얀#토끼#이상한나라의엘리스#매트릭스#망각#기억#무의식#1 [명시 산책] 임솔아 <하얀> 하얀 불을 끄니 불을 켜고 있을 때의 내 생각을 누군가 훤히 읽기 시작한다. 낮에 만난 이야기들은 햇빛에 닿아 타버렸다. 베란다의 토끼는 귀가 커다랬고 털이 하얬고 나날이 뚱뚱해졌다. 내가 없는 한낮에 벽지를 뜯고 책상을 갉고 내 운동화를 핥다가 어느 날 죽어버렸다. 입술을 뜯어 먹다가 내 입술에서 배어 나오는 피를 빨아 먹었는데 왜 그랬습니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살인자는 대답한다. 나는 다른 죽음을 향해 채널을 바꾼다. 불 꺼진 방에 앉아 있다. 아픈 사람처럼 누군가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 토끼를 씻어주었던 날 토끼는 죽었다. 나는 두 손으로 누군가의 까만 그림자를 씻는다. 기억나지 않던 것들이 기억나기 시작한다고 살인자가 대답한다. 불을 켜니 불을 끄고 있었을 때 누군가가 하던 생각을 이어서 하.. 2022. 5. 4.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