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거울#꿈#밤#환상#환영#심연1 [명시 산책] 보르헤스 <거울> 거울 나는 거울에 공포를 느꼈네. 살 수 없는, 상들만의 거짓 공간이 다하고 시작하는 침투할 길 없는 거울 면에는 물론, 파문이 일거나, 역상의 새가 이따금씩 환영의 날갯짓을 아로새기는 심연의 하늘 안에 또 다른 푸르름을 모방하는 사색에 잠긴 물 앞에서도, 아련한 대리석과 장미의 순백색을 꿈처럼 답습하는 윤기를 지닌 오묘한 흑단의 고즈넉한 표면 앞에서도, 유전하는 달빛 아래 당혹스런 세월을 숱하게 방랑한 뒤, 오늘 나는 어떤 운명의 장난이 거울에 공포를 느끼게 했는지 묻는다. 금속의 거울들, 응시하고 응시되는 얼굴이 붉은 노을 안개 속에 흐릿해지는 마호가니 가면 거울, 그 옛날 협약의 근원적 집행자들이 잠들지도 않고 숙명처럼, 생식하듯 세계를 복제하는 것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네. 거울은 자신의 현란한 거.. 2022. 6. 2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