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늙음#겸손#너그러워지다#늙은남자#부끄러움#추억#과거1 늙음 거칠고 성기던 머리칼이 겸손하게 고개를 숙인다 이마가 더 빛나고 너그러워진다 바람이 불면 세차게 뻗쳐오르더니 이제 바람의 반대쪽으로 드러눕는다 가시와 엉겅퀴도 뿌리가 다 드러나 기진맥진하고 단단하던 돌들도 부스러진다 푸른 어깨가 파도의 끄트머리처럼 주저앉고 뻣뻣하던 무릎이 고요해진다 늙다, 자기 인생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알게 되다 수치를 가르치는 나이듦 사는 것이 모욕이라는 것쯤 젊은들 모르랴 이가 닳아서 먹을 수 없다 쓴 맛을 느낄 수 없다 행복한 단맛뿐 추억이 주는 달콤한 향락 속에서 나는 죽어가고 있다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과거를 상상하며 미래로 빠져든다 늙은 남자에겐 내일이 전부다 오늘 잘 살았다 고맙다 2020. 5. 2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