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숙#다른 동네#1 [명시 산책] 김행숙 <다른 동네> 다른 동네 폐가 되지 않는다면 댁의 화장실을 좀 써도 되겠습니까 폐가 되지 않는다면 흥겹게 먹고 마셔도 되겠습니까 저녁부터 골목이 깊어집니다 다른 동네까지 공손한 거지들이 손을 오므리고 지나갑니다 오목한 손, 저 손이 줄줄 흘리는 것들을 따라 화들짝 놀라서 피하는 사람들을 따라 좁은 길이 생기고 양족으로 갈라진 머릿결 같은 무리들이 눈빛을 잃고 잃어버린 것들이 공중에서 얼어붙습니다 거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제 불을 켤 시간이 되었습니다, 주인님 백 년 전의 하인들이 등잔을 받쳐 들고 계단을 올라갑니다 백 년 동안 영원히 폐 끼치고 싶지 않아요 폐가 되지 않는다면 비명을 질러도 되겠습니까 마음이 없어져도 좋습니까 우리는 금세 공기 중에서 녹으니까 꿈에서 꿈으로 이동하듯 부드러운 우리는 보이지 않으니까 시간.. 2020. 12. 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