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빈집#1 [명시 산책] 기형도 <빈 집> 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기형도 【산책】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시를 정의하는 한 줄이다. 시란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잃었을 때, 슬픔에 젖어 있을 때, 그래서 고독할 때 쓴다. ★ 시인은 사랑을 잃고 돌아와 시를 쓴다. 시인은 지금까지 자신을 둘러싼 것들과 이별하면서 인사를 나눈다. 어쩌면 사랑 때문에 밤을 새웠을지도 모를, 그러나 그 시간이 오히려 짧았던 밤에게, 시를 쓸 때면 창가에 떠돌던 겨울안개에게, 방.. 2020. 10. 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