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미#가시연#1 조용미 <가시연> 가시연 태풍이 지나가고 가시연은 제 어미의 몸인 커다란 잎의 살을 뚫고 물속에서 솟아오른다 핵처럼 단단한 성게 같은 가시봉오리를 쩍 가르고 흑자줏빛 혓바닥을 천천히 내민다 저 끔찍한 식물성을, 꽃이 아니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꽃인 듯한 가시연의 가시를 다 뽑아버리고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어 나는 오래 방죽을 서성거린다 붉은 잎맥으로 흐르는 짐승의 피를 다 받아 마시고 나서야 꽃은 비명처럼 피어난다 못 가장자리의 방죽이 서서히 허물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금이 가고 있는 그 소리를 저 혼자 듣고 있는 가시연의 흑자줏빛 혓바닥들 ―조용미 【산책】 장미에 가시가 있듯이 연꽃에도 가시가 있다. 가시연. 아름답기보다는 흉물스런 꽃대를 가지고 있어서 에일리언에 나오는 외계생물의 촉수달린 혓바닥처럼.. 2020. 7. 6.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