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6
그녀는 전화를 끊고 당사로 달려갔다.
“M당과 H당에서 우리 당의 공천에 시비를 걸 작정이랍니다. 곧 고발장을 내겠다는 소식입니다.” 수석비서 김미호가 말했다.
“공천백서는 준비되었겠죠?” 그녀가 물었다.
“내일 오전에는 인쇄되어 오후엔 도착할 겁니다.” 오정은 비서가 말했다.
“인터뷰를 좀 잡아주세요. 빠르면 오늘 저녁이나 내일 오전쯤에요.” 그녀가 말했다.
“네.” 김미호가 대답했다.
“대표님, 김효은 씨랑 다시 약속을 잡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오정은이 물었다.
“그건 좀. 그쪽이랑 너무 많이 하는 게 어떨지, 생각해보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김미호가 답했다.
“이왕에 그쪽에서 시작했으니까 계속 가는 게 어떨까요? 우리한테 호의를 보이는 쪽과 계속 밀어붙이는 게 더 도움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정은이 계속 주장했다.
“한쪽만 보고 가기엔 리스크가 크지 않을까요?” 김미호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고민했다. 두 사람 모두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에 어느 한쪽 손을 들어주면 서로 불편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이렇게 하세요. 오늘 저녁이나 내일 대표 기자회견이 있을 거라고 보도자료를 내세요. 가장 먼저 연락이 오는 곳과 단독 인터뷰를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모두 다 끌어안고 가기엔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의견이 먹히는 쪽과 손잡고 빠르게 갑시다.”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인사를 하고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김효은이 회의실로 들어왔을 때 대부분은 매우 상기된 얼굴로 열띠게 토론하고 있었다. 국장도 와 있었다.
“거대 양당이 선전포고를 하고 나설 가능성이 90% 이상이야. 행복당을 죽이려고 들 거야.”
국장이 말했다.
“곧 공천비리 고발장을 낼 거라는데요.” 이정민이 말했다.
“M당은 자기네들 선명성이 흐려진다고 걱정일 테고, H당은 M당보다 세게 나오는 행복당을 밟아야 자기들이 안정적인 국정운영 책임자라고 떠들 수 있을 테니까.” 국장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국장님, 이제 어떻게 하죠. 두 당에서 세게 나오면 우리가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보도 1차장이 말했다.
“저는 일단 하던 대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왕 시작했는데 M이랑 H가 세게 나온다고 발을 빼면 우릴 더 우습게 볼 수 있습니다. 한성실을 밀어준 게 분명한데 이제와서 모든 당에게 공정한 기회를 준다고 태도를 바꾸면 우스워질 겁니다.” 3개의 토크쇼를 전담하고 있는 김정수 차장이 말했다.
“아, 김효은이. 오늘 자네 프로 청취율 최고 찍었다며?” 국장이 그녀를 보며 물었다.
“네? 아, 그게, 뭐. 작가한테 듣긴 했는데 자세히는 잘 몰라서요.” 김효은이 대답했다.
“라디오국에서도 난리났어. 반응이 이렇게 뜨거울 줄 몰랐대. SNS에서 장난 아니라든데?” 보도 1차장이 말했다.
“확실히 여성 유권자들의 마음은 제대로 흔들었다는 얘깁니다.” 아침 뉴스를 담당하는 PD가 말했다.
“이거 진짜 기회야? 같이 망하는 길로 가는 거야?” 국장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현정부도 곧 반응이 있을 거랍니다. 사흘 만에 정말 뜨거운 감자가 됐어요. 문제는 M당이에요. 이걸 받자니 너무 뜨겁고, 안 받자니 유권자들 관심이 행복당 쪽으로 쏠릴까 걱정인 거에요. 지난번에 S당이 그렇게 돌풍을 일으킬지 몰랐는데, 이제 겨우 숨 좀 고르려는데 행복당이 치고 나오니까요. 비례 선거가 이런 식으로 바뀌니까 지역구는 몰라도 비례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게 됐다니까요.” 김차장이 말했다.
“비례는 깍두기니까 원래 양당지지자들도 괜찮은데 있으면 찍어주려는 생각이 많아요. 한 번 선거에 두 번 찍을 수 있으니까 두 번째는 강력한 스패어를 찍는 거죠.” 아침 뉴스 아나운서가 말했다.
“중도 유권자 중에는 지역구는 기권이나 무효 만들고 비례만 찍겠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녹색이나 정의, 진보, 기본, 행복당까지, 비례 쪽이 더 치열하고 정책대결한다고 재밌다고.” 심야 토론 PD가 말했다.
“10년 전에 J본부가 태블릿 하나로 치고 나왔잖아요. 우리도 행복당하고 같이 갑시다. 그래서 우리 뉴스도 1위 찍고, 참신하다고 눈도장 찍는 거에요.” 김차장이 강하게 나왔다.
“어떻게 해? 손들어 봐. 행복당으로 가는 거야?” 국장이 거수로 표결하려고 했다.
“아, 잠깐만. 우리가 M당, H당 빼고 가면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요.” 이정민이 막고 나섰다.
“자네, 곧 출마한다고 말이 많던데, 이번은 아니고, 다음엔 M이랑 H쪽 어디든 선택해야지, 고민이 많겠네. 자네가 나서서 행복당 도와주면 다음에 곤란해지겠네. 자넨 빠져.” 보도 1차장이 말했다.
“아니, 제 개인 문제가 아니라, M이 재집권할 텐데 뒷강담이 안되니까 그러죠.” 이정민이 기죽은 표정을 말했다.
“저 친구도 참. 그러니까 이번에 행복당을 꺾는데 자네가 일조해야 다음에 기회가 있다 이거 아니야.” 보도 1차장이 언성을 높였다.
“자, 이렇게 하자고. 9시 뉴스에서 더 이상 행복당 얘기 꺼내지 마. 그냥 정말 뉴스로만 다뤄. 대신 오전에 토론, 오후에 재방송, 심야에 토론 또 해. 김차장이 맡아. 그리고 앵커는 무조건 김효은 써. 김효은이랑 한성실, 묶어서 가는 거야. 잘 안 되도 여성들끼리 뭉쳐서 일 벌인 거라고 해. 우리 방송국 보도지침은 아니라고. 일종의 이벤트라고. 그래서 잘 되면 좋은 거고. 잘못되면 그저 해프닝 정도로 치고 넘어가자고.” 국장이 능구렁이처럼 결론을 냈다.
“저는 여성이 아닌데요.” 김차장이 웃으며 말했다.
“가끔 페미니즘 찬동하는 남자도 있자나. 자네가 그 역할 맡아. 보니까 행복당 좋아하는 모양이든데, 뭘.” 보도 1차장이 김차장 어깨를 치며 말했다.
이정민만 뭐 씹은 표정이었고, 다들 일이 재밌게 돌아간다고 느끼는 표정으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김효은은 윗사람들 의견에 고개를 저었지만 어차피 기회가 온 바에야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인금지법이 금수저를 재생산 하는 일만이라도 막을 수 있다면 그만큼 우리 사회가 민주적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선거 때까지 지금 이 시청률로 쭉 가는 거야. 더 오르면 더 좋고. 아, 김효은이, 한성실한테 미리 약 좀 쳐. 우리랑 계속 같이 가자고. 중요한 건 우리랑 하고, 다른 본부랑은 뒷북 치는 걸로 하자고. 알겠어?” 국장이 그녀를 향해 특수임무를 부여하는 양 말했다.
“네, 뭐, 그러죠.” 김효은이 대답했다.
“얼마 안 있으면 결론 나겠지. 20석 딸지 못 딸지.” 국장이 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행복당은 이제 첫 돛을 펼치고 나아가고 있는데 앞으로 얼마나 큰 풍랑을 만날지 모른다. 돛이 부러질지, 아니면 풍랑을 거스르고 항구에 닻을 내릴지. 곧 최종 성적표를 받아들 것이다. 웃게 될까, 통곡할까.
회의가 끝나자마자 김효은은 한성실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얘기 들으셨죠? 공천이 어쩌고 하는 거.”
“네, 앵커님. 이제 양당에서 우릴 신경쓰네요.”
“그러게요. 말도 안 되는 공약이라고 치부하고 말 줄 알았는데.”
“제가 방송 3번 출연하고 표적이 될 줄 몰랐어요.”
“대표님, 곧 전국구 스타되시겠어요.”
“그럼 안 되죠. 행복당이 주목받아야죠. 대선도 아니고, 지역구도 없는데, 우린 비례 선거하잖아요. 당이 관심받고, 표를 얻어야죠. 국회교섭단체가 되어야 발의라도 해보죠. 다들 말도 안 되는 법안이라는데.”
“그러게요. 말도 안 된다면서 관심은 장난 아니에요.”
“지금은 관심만 받아도 좋은 거 아니에요. 관심조차 못 받고 죽는 법안이 얼마나 많아요.”
“맞아요, 대표님. 좀 전에 우리 작가가 대표님 공천 관련 기자회견 하신다면서요?”
“네.”
“언제요? 어디서요?”
“앵커님도 오시게요?”
“대표님이랑 친구하기로 했잖아요, 무조건 제가 가야죠.”
“앵커님, 오시면 앵커님과 대화 형식으로 하는 것도 좋을 텐데.”
“아. 딱딱한 기자회견 대신 토크쇼처럼요?”
“그거 좋겠네요. 공천 관련 속얘기도 할 수 있으면 사람들도 더 관심 가질 수 있고요.”
“와, 방송 3번 나오시고, 방송 잘 아시네. 주목 받으려면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야 해요. 그럼 당장 시간 잡아요. 제가 독점으로 가는 거 맞죠?”
“그래요, 우리 친구잖아요.”
“와우, 대표님 짱. 친구끼리 잘 해봐요.”
전화를 끊고 김효은은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한 대표와 공천 이야기 방송하기로 했으니 시간 좀 잡아달라도 말했다.
“30분이면 되겠어? 보도국장한테 9시 뉴스 전에 30분 잡아서 미리 내보내고 뉴스에서 잠깐 언급하지 뭐.”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밤에 토론도 해요?”
“하자고, 한 대표와 반대하는 쪽 사람들 한둘 부르는 거야. 그래서 토론 붙이자고. 한 대표가 치고 나가면 우리야 좋지.”
“네, 국장님. 저는 지금 행복당으로 갈 테니까. 카메라하고 스텝들 보내주세요.”
“알겠어. 이건 뭐, 우리가 선거하는 거야? 왜 이리 정신이 없어.”
“방송도 전쟁이라면서요.”
“좋아, 가보자.”
김효은은 국장과 통화를 마치고 차를 몰라 행복당사로 향했다.
오정은 비서는 공천백서를 인쇄하는 곳으로 전화를 걸어서 인쇄를 좀 앞당겨서 해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다. 인쇄소 사장은 요즘 방송 보면 행복당 얘기뿐이라며 사흘 만에 무슨 일이냐며 당장 스케줄 잡아주겠다고 말했다. 저녁 9시 뉴스 전에는 공천백서가 보도자료로 배포될 수 있을 것이다. 오 비서는 수석에게 이 사실을 보고 했다. 수석은 곧 김효은 앵커가 올 테니 방송 준비하라고 말했다. 오 비서는 자기 생각대로 되었다고 속으로 웃었다. 오 비서는 중학교 교사였는데 SNS로 한 대표의 공약들을 보면서 이 사람이면 같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원봉사를 자청했다. 오 비서는 사회과목 교사였다. 야간에 따로 공부해서 정치와 윤리에 관한 상관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니던 학교에는 1년 무급 휴직을 신청하고, 3개월 전 캠프에 참여했다. 면접을 봤을 때 한 대표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고, 직업도 있는 여성이 자기 목소리를 내야 가장 떳떳하다며 반겼다. 면접 때 그녀는 한 대표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란 말이 있습니다. 대표님과 행복당은 지금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물이 바위 위로 떨어지면 언제가 바위가 갈라집니다. 물이 계속해서 오직 한군데만 떨어지면요. 한 방향으로, 한 가지 목표로 정진하면 바위 같은 장벽도 뚫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요, 그럼 같이 갈까요.”
그 뒤로 오정은은 닥치는 대로 일했다. 1달 뒤 대표는 그녀를 비서실로 들어오라고 불렀다.
오정은은 SNS를 통해 행복당 공약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가족, 친구, 학교, 대학 동창, 취미 동아리, 지역 밴드, 사회, 복지, 종교단체, 은행과 증권 쪽에도 쉼 없이 퍼다 날랐다. 그는 공약을 베껴서 옮긴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언어로 번역해서 올렸다.
금수저, 흙수저를 없애려면 수저부터 없애라? 상속받을 게 없다면 부모를 바꿔라? 부모를 바꿀 수 없다면 상속법을 없애라? 한국기독교교단 홈페이지에는 세상 모든 교회들이 이웃사랑을 목놓아 외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한국교회 성도들이 이웃 한 사람씩만 사랑하고 보살핀다면 무슨 기적이 일어날까? 이런 식의 글들을 올렸다.
증권사 커뮤니티에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주식을 양도하는 대신 주식을 잘하는 방식을 가르친다면?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땅에는 주인이 없다. 희년을 아시나요? 집이 한 채도 없는 사람이 집을 한 채를 얻는 방법은? 집이 스무 채 있으면 19채는 집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난 뒤에 행복당 공약을 답글로 부기했다.
김효은이 도착하자 비서실은 더욱 분주해졌다. 회의실로 방송국 스텝들이 속속 들어오고 여러 대의 카메라가 세팅됐다.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소파가 안쪽에 놓였고, 한 대표와 김 앵커가 자리잡았다. 저녁 7시 반이었다. PD가 사인을 주자 김효은이 입을 열었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오늘 연달아 두 번씩 뵙네요. 정말 반갑습니다.”
“네, 앵커님 저녁 식사 잘 하셨어요?”
“네, 우리 스텝분들과 행복당사 앞 행복식당에서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듯한 집밥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괴식하지 않으셨어요?”
“대표님도 그러시나봐요. 정말 나도 모르게 밥을 한 공기 더 먹었거든요. 생선이랑 찌개랑 우와 끝내줬어요. 며칠 만에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우리가 이곳으로 오고 나서 얼마 뒤에 사장님이 식당 이름을 바꾸셨어요. 그리고 조미료 안 쓰고 천연재료로 맛을 내고 건강한 밥상을 지으려고 애쓰셨어요. 우리 당원도 되시고요.”
“대표님이 사람 변화시키는 재주를 가지셨나봐요. 저도 대표님 만나고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거든요.”
“정말 고마운 말씀이네요. 정치는 사람도 바꾸고 세상도 바꿔야죠. 그게 정치죠. 데리다나 들뢰즈 같은 분들도 후기엔 모두 정치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글도 썼죠. 왜냐하면 정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데서 출발하니까요. 철학도 어떻게 살까 고민하는 거잖아요.”
“맞아요. 행복당은 깊게 고민하고 대안을 찾는 정당 같아요.”
“네, 행복당은 질문하고 답을 찾고, 그걸 실천하는 정당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권자 여러분의 지지가 꼭 필요하고요.”
“오늘 급히 다시 만나게 된 건 바로 행복당의 공천 이야기가 궁금해서인데요. 공천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간략하게 말씀해주시겠어요.”
“간략하게 안 될 것 같은데 길게 하면 안 되나요? 하하하.”
“아닙니다. 길게 하셔도 되요. 30분 안에서. 호호호.”
“비례대표후보 공천은 먼저 아무런 조건 없이 신청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동안 우리 당원으로서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보고, 물론 당비나 후원금 내신 것도 보고요. 그리고 우선 100명을 추려서 그분들께 정책 공약을 받았어요. 공약을 정리해서 후보자 신상과 함께 당원 게시판에 올리고 투표 앱을 띠웠어요. 그리고 투표를 시작했죠. 당비나 후원금 내역 등은 따로 올려두었고요. 당원들은 좋은 정책을 써내신 분들 가운데 오직 한 분에게만 투표할 수 있었어요. 후보자들은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순서대로 번호를 부여받게 되었어요. 그래서 현재 순번이 나온 거에요.”
“처음에 대표님은 순번에 없었다면서요.”
“저는 대표가 될 줄도 몰랐고,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후보 신청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당원들이 후보 최종 결정 전에 이의를 신청했어요. 당에서는 순번을 정하고 당원들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이 후보들을 이 순번으로 하는 데 이의가 있는지 3일 안에 최종 결정하는 절차였어요. 근데 당원들이 제 이름이 없다고 꽤 많은 분들이 이의 제기를 하는 바람에.”
“근데 대표님은 왜 30번이죠?”
“사실 당과 당원들 모두 제가 1번이나 앞 순번이어야 한다는 의견이었죠. 후보들의 정책공약도 제가 이전부터 주장해왔던 것을 구체화한 것이고, 큰그림은 모두 제가 그린 것이라면서요. 하지만 저는 뜻있는 분들이 더 많이 당선되길 바랐어요. 그래서 30번 정도면 적당할 거라고 그분들을 설득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소수당에서 30번이라면?”
“글쎄요. 20명 이상이어야 교섭단체가 되니까 최소한 그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고 말들이 많았어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지난번에 돌풍을 일으킨 S당도 18석이었어요. 10번 안에 들어야 뱃지를 달지 않을까요?”
“다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제가 낸 정책들이 정치에 반영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 제가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우리 후보자들 모두 좋으신 분들이고 저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분들이라 그분들이 국회에 진출해서 정책을 추진하면 된다고 믿었어요. 저까지 꼭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30번은 너무 했어요. 그리고 원외 대표가 얼마나 힘없고 말발이 서지 않는다는 걸 역사가 증명하고 있잖아요, 대표님이 원내로 들어가셔야 할 것 같은데.”
“제 걱정을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는 만약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명성만으로 투표하지 않고, 정책을 보고 투표하신다면, 물론 우리 정책을 좋게 보셔야 하겠지만, 저는 우리당이 비례대표 선거에서 탁월한 성적표를 받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난번 선거에서 S당이 받은 것보다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봐요.”
“그럼 30석까지도 예상하시고, 대표님이 국회 문을 닫으면서 들어가시는 걸로?”
“모르죠. 모르겠어요. 하지만 좀 더 힘차게 정책을 추진하려면 30석 이상 확보한다면 정말 제대로 싸워볼 수 있겠다 싶어요.”
“와우. 대박. 정말 포부가 크시네요.” 김효은은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유권자 여러분 보고 계시죠. 행복당 홈페이지 방문하셔서 게시판 잘 둘러보시고, 행복당 정책이 좋으면 많이 투표해주세요.”
“앵커님, 정말 감사한 말씀인데 방송은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니에요?”
“몰라요, 저는. 하지만 방송도 어떤 정책을 지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방송국은 지상파도 아니고, 민간 방송이거든요. 아, 참. 유권자 여러분. 방금 말씀 드린 것은 저 개인의 생각일 뿐입니다. 우리 방송국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자, 이러면 되지 않겠어요. 아님 사표 쓰죠, 뭐. 징계를 세게 받든가. 괜찮아요.”
“하하하. 앵커님도 참.”
“공천백서도 나온다면서요.”
“네, 자세한 내용을 지금 인쇄하고 있어요. 9시 뉴스 전에 방송국과 관련한 곳에 배포될 예정입니다. 원하시는 유권자께서는 우리 당사 현관에 배치할 예정이니 언제든 가져가셔서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행복당의 정책 공약 가운데 유권자들이 가장 예민하게 들여다 보는 부분이 상속인 것 같아요. 한말씀 더 해주신다면 어떤 말씀하시겠어요.”
“국민들께서는 걱정 안 하셔도 된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우리당은 1가구 1주택 정책을 먼저 추진할 생각입니다. 만약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가 한집에서 살았다고 칩시다. 부모 세대가 돌아가시고 자녀들이 그 집에 살기를 원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상속을 못한다면 그 집은 국가에 귀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1가구 1주택 법이라면 부모 세대가 돌아가시고 자녀 중 1가구가 그 집에 살고 싶어하면 그 집에 살 수 있습니다. 그 집이 너무 작아서 1가구를 수용할 수 없다면 그 집을 팔고 큰집을 사서 옮겨 살 수도 있습니다. 그 집이 너무 커서 여러 세대가 함께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됩니다. 부모의 집은 자녀들의 집이기도 하고, 가족들이 살면서 추억을 쌓은 곳이니까요. 그러니까 1가구 1주택 취지에 맞다면 그 집은 자녀들에게 상속될 수 있습니다. 상속이란 말 대신 자기 집에 그냥 자기가 산다고 말해야겠군요. 승계? 아무튼 집 문제는 그렇게 될 것이니 아무런 걱정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단 1가구 1주택이란 원칙 하에서.”
“그럼 집을 구하지 못한 자녀들은 어떻게 하나요?”
“자녀 중 1가구만 부모집에서 계속 산다면 다른 자녀들은 살 집을 마련해야 되겠죠. 자녀가 경제 능력이 돼서 자기 집을 마련하고 산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국가는 적극적으로 1가구 1주택이 실현되도록 힘쓸 것입니다. 우리 당은 국민이 재산증식이 아닌 자기 살집을 마련하기를 원한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도울 것입니다. 1가구 1주택이 실현되는 그날까지 말입니다. 그러나 1가 2주택, 혹은 그 이상 집을 소유한 사람들은 그만한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집은 그냥 살기 위한 것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1가구 1주택 정책은 집을 하나 이상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집을 2채 이상 가진 사람들은 빨리 팔아야겠네요."
"그분의 재산이니까 그분들이 알아서 처분해야겠죠. 어쨌든 집 대신 다른 투자처를 알아봐야 할 것입니다."
"부동산 관련 다른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무엇보다 지금 우리나라는 지역 불균형이 심각합니다. 주택이 모자라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공실이 나는 곳도 무척 많습니다. 행복당은 우선 교육과 취업 정책을 개선해서 이를 상쇄하려고 합니다. 서울 외 지역에 수준 높은 교육시설을 마련하고 대학을 세우고 기업을 유치할 것입니다.
지역에 폐교되는 학교가 많은데 오히려 행복당은 그곳에 작지만 퀄리티 높은 학교를 더 많이 세울 것입니다. 앞으로는 AI와 경쟁해야 합니다. 더 뛰어난 지식인재가 필요합니다. 교육시설이 좋으면 시골이라도 사람이 찾아올 것입니다.
특히 수도권 외 지역 신혼부부들에게 주택을 마련해주고 양육비와 육아시설도 지원할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좋은 환경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취업까지 가능하도록 할 것입니다.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사람이 태어나면 양육, 교육, 결혼, 취업, 주택 마련, 출산, 다시 양육에 이르는 전과정을 국가가 케어할 것입니다.”
“그럼 그 많은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죠?”
“항상 어떤 정책이 새로 발의하면 반대하는 쪽에서는 재원 마련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고나옵니다. 하지만 좋은 정책이 있으면 재원은 따라온다고 믿습니다. 보도블럭을 다시 깔지만 않아도, 여기저기 새는 예산만 잘 막아도, 불필요한 경비만 줄여도 가능합니다. 물론 우리 행복당은 재원 마련에 따른 구체적인 정책도 준비해두고 있습니다.”
“아, 너무 궁금한 게 많은데 시간이 아쉽네요. 아무튼 행복당 공천에는 아무런 비리도 없고, 아주 공정하게 진행되었다는 말씀 잘 들었습니다. 당원이 투표하고 최종 결정까지 하는 절차상 가장 민주적인 공천 과정이었다. 더욱이 대표가 30번이라는데 더 이상 뭐라고 시비하겠습니까? 그동안 거대 양당이 점점 고인물이 되어 신선한 정책이 없던 차에 행복당의 행보는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대표님과 행복당의 선전을 기원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행복당 당사에서 김효은이었습니다. 대표님,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녹화된 자료는 8시 30분 기존 프로그램을 밀고 방송되었다. 9시 뉴스에서는 행복당 공천 보도자료가 짧게 방송되었다. 이정민은 덤덤하게 공천보도자료를 요약해서 읽었다. 정인주 아나운서가 김효은 대신 이정민과 짝을 이루었다.
“대다수가 여성 당원으로 이루어진 행복당의 행보가 심상치 않습니다. 지역별로 공청회를 열어 정책을 알리고 있는데 오늘 오후에 국회가 있는 영등포구 각 지역 맘카페 회원들과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지난 대통령 탄핵 시 모였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하면서 새정책 새실천이란 당의 선거 구호를 현실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여의도 한 아파트 맘카페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 있는 최민주 기자 연결하겠습니다. 최민주 기자 그곳의 분위기 전달해주시죠.” 정인주 아나운서가 멘트를 쳤다.
“이곳은 행복당 공청회가 열리고 있는 B아파트 커뮤니티센터 북카페입니다. 많은 맘카페 회원들이 모여 행복당 정책에 대한 소개를 들고 회원들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데요. 한 회원을 모시고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공청회에 참가하시고 느끼신 점을 듣고 싶은데요.” 최민주 기자가 마이크를 내밀었다.
“여성들에겐 결혼과 육아가 정말 중요해요. 새로운 법안이 마련되면 어떻게 바뀌는지 듣고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어떤 점이 와 닿았나요?”
“가사노동을 인정하고 급여를 지불하는 것도 좋았고요. 아이를 낳으면 국가에서 책임지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봐요. 아이들에게 공평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거든요. 상속이 금지되면 빚이 상속되지 않는다는 것도 좋았어요. 사실 아버지 사업이 잘 안 돼서 우리 가족들이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빚을 갚고 있는 형편이거든요.”
“네, 그럼 행복당의 정책이 뜬구름 잡는 것처럼 느껴지시나요, 아니면 매우 현실적이고, 뭔가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 느껴져지시나요?”
“잘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대로 된다면 새로운 환경이 마련되고,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럼 마지막으로 행복당의 정책이 여성 위주이고, 성별 갈라치기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갈라치기란 누군가 어떤 대상들을 반으로 나누고 한쪽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니면 누군가 자신의 익을 위해서 일부러 반으로 나누고 싸움을 붙이는 거 아닌가요? 하지만 행복당은 여성 스스로 여성의 이익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여성이나 남성 모두가 행복한 길을 찾고 있기 때문에 매우 바람직하다고 봐요. 결혼이나 상속은 여성뿐만 아니라 사람들 누구가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고, 부동산과 교육 문제 또한 그러니까요. 저는 행복당 잘 됐으면 좋겠어요.”
“그럼 이번 선거에서 행복당에 투표하실 건가요?”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비례대표만 나온 거니까 행복당에게 표를 줘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얘기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여의도에서 최민주였습니다.”
사람들은 어떨 때 행복하다고 느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최소한 행복의 조건은 있는 것 같다. 먹고 사는 데 별 걱정이 없을 것. 가족이 평안하고 건강할 것. 꿈을 이루거나 꿈을 향해 나아가는데 장애가 없을 것.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면서 살 수 있을 때. 등등.
행복이란 뭔가 대단하고 큰 것이라기보다는 작지만 매우 기본적인 것들의 충족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어릴 때는 부모로부터 보호받고 사랑받는 데서 오는 충족감, 커서는 친구나 동료, 연인과 사랑을 나눌 때의 충족감, 학교나 직장, 사회에서 인정받았을 때의 만족감 등. 물론 그것이 작지 않고, 큰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매우 중요하고 아주 기본적인 것이라는 데 있다. 그런 기본적인 요구들이 잘 충족되는 공동체라면 그 구성원들은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각자 생각하는 행복의 크기는 다를 수 있지만 작든 크든 아주 소소하지만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들이 충족되는 공동체야 말로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낮다면 아마돟 기본적인 것들이 덜 충족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의 능력에 의해 자신의 능력이 판단되는 세상이라면? 개인의 자유와 능력보다는 집안 배경이나 학연, 지연 등이 강조된다면? 개인의 자아 실현은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신분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쩌면 아직도 우리 사회가 신분사회라면 어쩔 것인가. '신분'이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 사회는 아직 근대화되지 않았다. 나와는 상관없는 것들 때문에 나의 신분이 결정되다니! 아니, 신분이라는 말 자체가 없는 세상이 근대시민민주사회일 것이다. 부모와 상관없이 오직 나의 의지와 능력에 따라 살 수 있는 사회여야 사람들이 행복의 첫 단추를 끼울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결혼에 따른 법적 효력이 금지되어야 한다. 부부도 부모자식 관계도 법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어야 한다. 오직 사랑과 윤리로 부부와 가족이 하나일 때 그것이 진짜 부부요, 가족 아닐까.
모든 방송국 9시 뉴스는 행복당의 공천과정과 결과를 다루면서 행복당 대표의 30번 순번이 과연 만용인가, 현실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해 열띤 논의를 펼쳤다. 행복당의 정책보다는 행복당의 당선자 숫자가 10을 넘길 것인가, 20을 넘어 교섭단체가 될 수 있을 것인가, 30까지 이르러 당당히 국회의 주인 노릇을 할 것인가를 주목했다. 방송에 나온 정치평론가들 일부는 노스트라다무스가 빙의한 듯 행복당은 잠깐 파도를 일으키겠지만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른 일부는 20-30석을 당선시켜 정치권을 재편할 것이라고 예언을 하기도 했다. 소수 의견으로는 곧 M당과 합당 논의가 벌어질 것이라거나 H당의 정치공작에 의해 산산조각날 것이라고도 했다.
행복당의 정책을 다루는 방송은 거의 없었다. 그 이유는 먼저 거대 양당에서 이 선거를 정책 선거가 아닌 기존의 방식 즉 세를 과시하는 것으로 몰고 가려 하기 때문이다. 행복당은 아마추어 정당이다, 현실가능성이 전혀 없는 정책을 들고 나와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한다, 행복당은 공산당이다, 토지를 국유화하고,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상속을 금지한다, 요즘처럼 결혼도 안 하고 출산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무슨 결혼금지법이냐, 이런 식의 이야기만을 반복적으로 해대고 있는 것이다. 방송들 역시 M당과 H의 이야기들을 그대로 따와서 앵무새처럼 보도하고 있었다.
이번 선거는 이슈가 없다. 지난 대통령이 탄핵되고 나서 새로 들어선 M당 정권은 경제적 안정을 이루었고, 정치적 보복을 최대한 자제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얻었다. 그래서 오히려 H당은 자신들의 지역 기반을 탄탄히 하면서 40% 정도의 득표를 희망하고 있다. M당은 지난 총선 때처럼 범여권이 60% 이상 득표하는 것을 목표로 소수정당의 국회 입성에도 길을 열어주는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H당은 75-80석, M당은 180-200석, 나머지 소수정당이 20석 내외를 나눠 갖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사실상 이번 선거는, H당은 탄핵 여파를 견디기 어렵고, M당은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우리나라 유권자들의 성향상 몰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틈새를 비집고 소수정당이 약진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소수정당들도 큰 이슈를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M당이 경제 성장을 이뤄 이를 자연스럽게 분배로 돌리는 바람에 새로운 경제 정책을 내세우기 어려운데다 H당 역시 자유로운 시장 경제와 더불어 문화 정책에 온 힘을 쏟은 탓에 기본소득 주장이나 환경 등의 문제를 거론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행복당이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정책을 가지고 치고 나온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이를 법안으로 만들고, 현실화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 발상 만큼은 신선했다. 분명 행복당이 들고 나온 정책들은 새롭지만 대책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별다른 이슈가 없던 선거판에 파문을 일으킨 것만은 분명했다. 거대 양당은 이 파문이 더 확산되지 않기를, 소수정당들은 행복당이 자기들 몫의 의석을 뺏아가지 않기를 기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복당이 내놓은 정책들에 반대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보다는 그 정책들이 그냥 묻히기를 바랐다. 그 정책들이 황당무계하고, 현실성이 전혀 없다는 이유로.
다음날 한성실 대표는 기독교방송연합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 대표가 성경에서 정책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것을 보고 정책을 입안했는지, 한 대표의 기독교관이 정통신학에 입각하고 있는지 혹은 이단이나 사이비는 아닌지 알고 싶다며 인터뷰를 요청한 것이다. 그녀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요청에 응했다.
사흘 뒤 그녀는 G방속국 <기독교명사초대석>에 초청받아 자리했다.
“안녕하십니까, 한성실 행복당 대표님, 바쁘실 텐데 자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회를 맡은 기독교문화실천연대 오철준 대표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녀가 인사를 했다.
“함께 나와주신 신명대학 신학부 이연우 교수님, 강남 오늘 교회 이창섭 목사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십니까?” 두 사람도 인사를 했다.
“오늘은 요즘 세간에 이목을 받고 계신 한 대표님의 신앙과 정치에 대해 궁금한 점을 이야기 나누고자 세 분을 모셨습니다. 우선 이창섭 목사님 한 대표님께 궁금하신 점 여쭤보시죠.”
“한 대표님 신앙생활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이 목사가 물었다.
“20대 대학시절 UBF에서 처음 시작했고, 협동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즘은 일절 교회에 나가시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저는 10여 년 전 신학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제도권 교회에는 출석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신학 공부를 그만두신 이유와 교회 출석을 안 하게 된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이 목사가 다시 물었다.
“신학대학원에서 있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신학대학원에서는 일주일 한번 채플을 하는데 어느 날 강당 현관에서 큰소리가 나서 봤더니 공직에서 퇴임을 앞둔 머리 희끗한 신학생이 아주 어린 학부생을 다그치고 있었습니다. 여학생이 뭘 잘못했는지 울면서 연시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하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종교학자는 우리나라의 종교는 유교라고 합니다. 부모에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을 신념으로 자리하고 있으니까요. 목사가 되겠다는 분이 미래의 동역자를 저토록 다잡고 있으니 어른이 나이 어린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문화는 교회 안에서도 그대로였습니다. 목사, 장로, 집사, 평신도 이런 식으로 사열을 매기는 수직적 위계질서는 성도끼리의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어느 날은 저의 전공교수님과 도서관에서 마주쳤는데, 사실 신학부 도서관이라는 게 매우 좁아서 서로 이야기를 하면 온방에 다 들렸거든요. 그 교수님은 한 번 입을 열면 쉬지 않는 타입이라 우리는 눈치를 보며 소리를 낮춰 간단히 대답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여성분이 도서관에서는 좀 조용히 하자고 말씀하셨어요. 그분은 구약을 가르치는 강사였습니다. 우리 전공교수님은 그 강사분 자리로 당장 달려가 대뜸 영어로 소리를 쳤습니다. 강사분도 영어로 몇 마디 대답했습니다. 그분은 미국에서 학위를 하신 분이라 그걸 알고 전공교수님은 처음부터 영어로 말씀했죠. 서로 영어로 다투더니 강사분이 도서관에서 떠드는 것은 아이들도 하지 않는 일이라고 우리말로 대꾸했습니다. 전공교수님은 우리는 모두 하나님 나라의 어린아이들입니다, 하고 소리쳤습니다. 도서관에서 조용히 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거기에 하나님 나라를 들먹일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을 구별합니다. 그리고는 세상의 상식 따위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무시합니다. 어느 목회자가 자녀를 때려 숨지게 하고서도 아이가 부활할 것을 믿고 부활시켜 달라고 기도하느라 시신에 썩을 때까지 방치했다는 뉴스를 들으신 적이 있을 테지요. 우리 교회가 맹신을 넘어서 삶의 기본 상식까지 무시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극단적인 예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이것은 어떻습니까?
어떤 분이 길을 가다가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 주위를 둘러보다 교회를 발견하고 들어가 일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목회자로 보이는 분과 마주쳤습니다. 목사가 누구냐고 묻자 길을 나그네가 볼일이 급히 들어왔다고 죄송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목사가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여기는 아무나 막 들어와도 되는 그런 데가 아닙니다." 나그네는 밖으로 나와 교회를 다시 쳐다보았습니다. 교회 정문에 큰 현수막이 걸려 있었는데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이웃초청총동원주일! 무거운 짐진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게로 와서 쉬어라. 이것이 우리 교회의 현재 아닙니까? 전도를 해서 교회에 데려와서는 백배 더 지옥 자식을 만드는 교회 말입니다.
신학대학원 1년 반을 다닌 뒤 휴학을 하려고 신청서를 접수하기 위해 신학대학원장과 면담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더니 곧 강의를 하니 빨리 오라고 해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들어오는 여성 교수와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몇 마디 나누었습니다. 한번 휴학을 하면 학교로 돌아오기 힘드니까 만류하셨죠. 어찌어찌 허락을 받고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려는데 신학대학원장이 우산을 들고 있던 팔을 앞으로 쭉 뻗으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야, 이거 내 방에 좀 갖다 놔.” 저는 고개를 들어 옆을 보았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고 들어오던 대학원 행정을 맡아 보던 40대 목사님께서 네, 하고는 우산을 받아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신학대학원이 수준 낮은 곳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그게 다 저의 개인적인 경험일 뿐 우리 교회의 현실과는 무관한 것입니까?
남편이 신학대학원에서 친구를 한분 사귀었는데 그분은 친구라는 이유로 남편에게 이것저것 요구했습니다. 부탁이 아니라 요구였습니다. 레포트를 대신 쓰라든가, 심지어 박사학위 논문조차 떠밀었습니다. 남편이 친구의 부탁이니까 최대한 들어주려고 애썼습니다. 레포트는 물론이고, 박사논문까지 초고를 잡으려들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이런 분이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렸어요. 레포트를 대신해주고, 박사논문까지,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들을 속이고, 자신의 양심까지 속이는 일이라고요. 남편은 고민하더니 논문 자료를 다 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그 친구가 인격이나 실력이 모자르지만 그 친구 나름대로 성도들을 섬길 수 있으면 목회를 해도 되지 않을까,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목사 안수를 받고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개척 초기라 평일엔 직장을 다녔고요. 남편은 노동을 하는 목사는 바람직하다고 봤지만 저는 그분이 직장에서도 아주 골칫거리이며 민원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사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과연 인격이나 실력이 모자란 사람이 목회를 하는 게 맞을까요? 저희 부부는 이 문제를 고민하다 신학대학원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우리 두 사람이 성경을 새롭게 연구하며 과연 예수 그리스도가 원하시는 것, 진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지금도 찾고 또 찾고 있습니다.”
그 순간 헛기침을 하며 이연우 교수가 끼어들었다.
“대표님 심정 이해가 갑니다. 우리 교회가 우리 사는 세상과 괴리되어 있다는 지적이 많으니까 말입니다. 그럼 우리 교회가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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